“두루미는 날마다 미역 감지 않아도 새하얗고, 까마귀는 날마다 먹칠하지 않아도 새까맣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는 사퇴의 변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표출했다. 정 후보는 “개인의 사생활이 악의적으로 왜곡”됐다거나 “재판 없이 사형선고”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항변했다. 그는 특히 부동산 문제, 공직자로서의 검소한 삶, 그리고 정치에 한눈 팔지 않은 것 등에 대해 하나 하나 거론하면서 해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문회를 통해 국민이 납득 가능하도록 해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만큼, 청문회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반면 야당에서는 청문회에서 터뜨릴 ‘한방’이 있었는데 기회가 없어져 아쉽다고도 했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인사는 이번이 여덟 번째라고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입장을 밝히고 해명할 기회를 얻은 인사는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까. 아예 청문회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낙마한 인사는 정동기 후보가 네 번째다. 낙마한 인사들이 남긴 어록도 네티즌에 의해 한동안 회자되면서 ‘낙마도 서러운데 조롱까지 당해야 하나’ 하는 동정 어린 시선을 낳기도 했다.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치면서 낙마한 인사들은, 모르긴 몰라도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억울하다고 할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론이 한번 가속도가 붙어서 어떤 방향으로 몰아가기 시작하면 ‘사실(fact)’이나 ‘진실(truth)’보다 ‘지각(perception)’이나 ‘인식(recognition)’이 상황을 지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당사자가 ‘사실’에 집착해 자신을 방어하려 하면 할수록 대중이 느끼는 ‘지각’은 더욱 반대 방향으로 거리가 멀어진다는 점이다.
지각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가. 개인은 주어진 정보 중에서 선택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며, 그 정보를 자신의 경험, 지식, 성장배경, 능력, 성격 등에 따라 가공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 개인의 편견 등 여러 가지 지각의 오류 등이 많이 작용할수록 사실과 거리가 먼 ‘지각’이 형성된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국민정서’ 또는 ‘여론’ 등은 집단으로 형성되는 지각이다. 국민정서는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 문화적 수준, 역사적 배경,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의 인식 수준 등에 따라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이 지각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하듯 집단도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급격한 재산증식’ ‘이중국적’ 등 몇 가지 키워드는 집단 지각의 ‘소프트 스폿’을 건드리는 폭탄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국민정서는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사회의 수준이며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설령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해도, 또한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돼 여론이 다소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편향됐다 해도 국민정서를 거스르거나 바꿔놓기는 대단히 어렵다.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과 보좌진은 국가정책을 수립하면서, 특히 국민정서와 가장 첨예하게 연결되는 ‘인사’를 할 때는 공표하기 전에 ‘국민의 눈’으로 제대로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국민정서에 무조건 맞추고 영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만약 사실과 지각의 차이가 크게 발생할 우려가 있는 인사라면 그 차이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미리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정서는 무시하거나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정하고 이해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는 ‘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