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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데이> ‘세상 꿰뚫는 혜안’ 이정미 헌재 재판관 지명자
뚝심이 필요하다. 남성 일색에다 특정 학교 학과(서울대 법학) 출신들만 모여 있는 그룹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필부부터 국회의원까지, 걸핏하면 옳고 그름을 판단해 달라고 찾아가는 헌법재판소. 그 곳에서 재판을 하는 아홉 자리 중 하나에 여성이 지명됐다.

이정미(49·여) 대전고법 부장판사다. 다음달 13일 퇴임하는 이공현 재판관의 후임으로 지목됐다.

일단 기록적이다. 여성이 지명된 건 2003년 전 전효숙 재판관에 이어 두 번째다. 최연소이기도 하다. 현재 9명의 재판관 중 가장 젊은 목영준(56) 재판관보다 7살이나 연하다. 모두 서울대 법대 출신인 재판관과 달리 고려대 법대 출신이라는 점도 부각된다.

재판관 앞에 붙은 ‘여성-최연소-비(非) 서울대 출신’이라는 수식어는 이 내정자가 향후 해내야 할 역할을 대변해 준다. 사회 각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라는 것. 이 내정자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자신을 지명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언론에 “청문회 절차가 남아서 조심스럽지만 만약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이 땅에 소수자 인권과 여성의 인권 보호에 노력하고 법질서 확립에도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내정자 스스로도 소임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대법원도 자료를 내 “헌재의 기능과 역할을 고려해 소수자 보호와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적절히 대변하고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인지를 인선 기준으로 삼았다”고 했다.

지난달 17일 대법관 후보 4명이 전원 ‘서울대 법대 출신 남성 고위 법관’으로 추천됨에 따라 그리 넓지 않는 법관 인재풀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져 대법원이 고심했다는 흔적이 읽힌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걸 미뤄볼 때 이 내정자의 활약을 기대해 볼만하다. 24년 외길 판사. 주로 민사 재판을 맡았고, 합의ㆍ조정을 잘 이끌어 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튀는 판결’은 눈에 잘 띄지 않으며 어떠한 이념적 성향도 내비친 적이 없다는 얘기도 듣는다. ‘이념의 과소비’ 시대에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덕목이다.

이 지명자는 그러나 재판관이 되면 현실과 싸워야 할 공산이 크다. 그의 앞에 붙은 수식어와 그가 20여년 간 판사 생활하면서 보여준 행보는 충돌의 여지가 많아서다. 헌재는 심심치 않게 정치적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아왔고, 재판관들의 이념 성향도 도마위에 올라왔다. 20대 중반부터 판사 생활을 시작해 사건 기록과 판결문 속에서 인간사, 세상만사를 꿰뚫는 혜안을 찾아왔을 그를 지켜보는 눈은 더 늘어났다.

<홍성원 기자@sw927>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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