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사람을 시켜 자신의 차에서 다른 스마트폰을 꺼내오게 했다. 당시 출시를 앞둔 팬택의 차세대 스마트폰 ‘베가’(시리우스 알파)였다. 박 부회장은 “스티브 잡스가 대단한 사람이지만 한번 비교해 봐 달라. 난 십여년을 휴대폰 하나만 만들었다. 기술 만큼은 자신있다”며 베가와 아이폰4를 조목조목 비교 설명했다.
그는 항상 누군가를 만나면 팬택을 말한다. 휴대폰, 스마트폰 기술이라도 주제에 오르면 이야기가 끝날 줄을 모른다. 최고경영자(CEO)이지만 폼을 잡는 법도 없다. 공개석상에서 잘나가는 스티브 잡스를 향해 “고객 앞에서 기술로 붙어보자”고 도발(?)하고, ‘갑’인 SK텔레콤에게는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앞으로 (국내에) 제품을 안 주겠다”며 으름장을 놓으며, 삼성전자에 대해선 “국내 대표기업 답게 끌어갔으면 한다”고 당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박 부회장이다.
물론 이런 자신감의 바탕에는 누구보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휴대폰 인생이 깔려있다. 스물 아홉살이었던 지난 1991년 그는 종잣돈 4000만원을 들고 직원 5명과 함께 팬택을 창업했다. 이후 현대큐리텔과 SK텔레텍의 인수하고 매출 3조원, 세계 7위의 휴대폰 업체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2006년말 찾아온 유동성 위기에 이듬해 4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수모를 당하고 만다. 4000억원대 주식은 한순간에 신기루가 됐다. 너무 힘든 나머지 한강을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백의종군했다. 잃을 게 없었다. 자존심이 너무 상해 더 미친 듯이 일했다.
그의 노력에 퀄컴 조차 지급 받지 못한 로열티를 출자전환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후 팬택은 작년까지 14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누적 매출 7조2000억원에 영업이익률만 7.1%. 작년에는 LG전자를 제치고 국내 스마트폰 2위로 뛰어올랐다.
28일 서울 상암동 팬택 사옥에는 팬택의 창립 20주년 행사가 조촐하게 열렸다. 누구보다 감회가 클 수 밖에 없는 그는 “포기할 줄 모르는 정신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힘이자, 현재까지 달려온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미래를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음을 확신한다. 나부터 앞장서겠다”며 스스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김대연 기자 @uh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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