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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배드뱅크는 해법 아닌 시작, 부동산 경기 회복 시급하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돈되는 건 뭐든 내다 팝니다. 살아 남아야 훗날을 도모하지요”

최근 만난 한 중견 건설사 고위 임원은 회사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사채시장이 아니면 급전을 마련할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건설사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저축은행들이 구조조정 한파에 떠밀리면서 12조2000억원 규모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 회수에 나서자 잘 나가던 중견 건설사들도 잇달아 부도공포에 휩쓸리고 있다. 무차별적인 대출회수는 17년 연속 흑자 건설사인 동양건설산업을 한방에 법정관리 기업으로 내몰았다. 이 회사와 거래중인 협력업체만도 400개가 넘고, 진행중인 공사장만 전국 100개에 달한다.

강주남 경제부 부동산팀장
부동산 경기 침체로 최근 3년간 국내 상위 100위권 건설사중 29곳, 3개중 1개 꼴로 공중분해 되거나 워크아웃,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25조원의 PF대출금 중 8조원이 2분기에 몰려 있어 ‘5,6월 건설대란설’이 확산되고있다. A,B,C사 등의 이름이 적힌 ‘살생부 리스트’가 금융가를 떠돈지 오래다.

기업어음(CP)은 커녕 BBB등급 이하 회사채 발행도 어려운 상황에서 저축은행들이 살아남기 위해 PF 대출을 무차별 회수할 경우 중견건설사들의 연쇄도산은 결코 ‘설’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게 더 큰 문제다.

늦게나마 ‘관치의 대가’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금융권에 PF 지원을 독려하고 나선 것은 ‘가뭄에 단비’격이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금융권이 무차별적인 PF 회수에 나설 경우 1차적으로는 중견건설사와 하청업체의 연쇄 부도로 이어지겠지만, 결국은 금융권에 부실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나 ‘배드뱅크’를 만들어 부실 확산을 차단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와 정상기업에 대한 근본적인 금융제도 개선 없이는 제2, 제3의 배드뱅크 추가 대책이 나올 수 밖에 없고, 급기야 금융시스템 전반으로의 리스크 확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우선, 일시적 유동성 부족을 겪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대주단협약 제도를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 채무상환 유예범위를 확대하고, 신규자금에 대한 원활한 지원이 절실하다. 현행 50~60%선인 대한주택보증 등 보증기관의 PF 대출보증 한도도 대폭 늘려야 한다.

또한, 담보대출 성격으로 변질 돼 있는 PF 대출을 줄이고, 개발사업 뿐 아니라 공공택지 주택사업도 별도의 법인을 만들어 리스크는 줄이고 수익은 극대화할 수 있는 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를 활성화해야 한다. 올부터 국제회계기준(IFRS) 적용으로 치솟는 건설사 부채비율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워크아웃 제도도 기업회생 지원을 위해 실효성 있게 운영돼야 한다. 건설업계에서는 워크아웃에 들어갈 경우 채권단이 채권회수에만 집중하고 신규투자는 중단, 경영정상화는 커녕 알맹이만 먼저 빼먹고 ‘먹튀’한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과연 금융권이 최근 워크아웃 대신, 법정관리를 신청한 건설업체에 ‘모럴해저드’라는 비난을 퍼부을 자격이 있는지 진지하게 되묻고 싶다. 지난 2009년 4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월드건설(71위)의 경우 채권단이 사이판 월드리조트, 역삼동 본사사옥, 사업부지 등 돈되는 알짜 자산을 모두 내다팔아 채권을 회수해 갔다. 대신, 철저히 신규자금 지원은 외면해 월드건설은 결국 워크아웃 돌입 21개월만인 지난 2월 단물만 빨린채 법정관리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보다 근본적인 해법은,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의 지적처럼 부동산 경기 회복이다. 시장 활성화를 위한 거창한 대책을 내놓으란게 아니다. 이중삼중으로 쳐진 ‘반시장적ㆍ포퓰리즘적’인 규제만 없애주면 된다. 이윤을 낼 수 있는 지역의 가격을 정부가 통제하면, 집장사꾼들은 성패가 불확실한 지역에는 아예 발디딜 엄두도 못 낸다. 지난 2005년 수도권 집값 폭등으로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할 당시 부산 등 지방 신규분양은 실종됐다. 공급이 끊긴지 3년여만에 집값이 뛰기 시작한 부산은 올들어서만 이미 매매ㆍ전세값이 모두 20% 가까이 폭등했다. 누르면 튀는게 시장 이치다. 1~2년뒤 수도권 집값 폭등이 재현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컨트롤 타워’없이 오락가락 하는 부동산정책도 문제다. 3.22대책으로 제시된 취득세 감면과 분양가 상한제 폐지가 무산되면서 시장 혼선만 부추기고 있다. 마무리되고 있는 4대강 사업 대신, 실타래처럼 꼬인 부동산 정책을 풀 ‘주택 장관’이 절실한 시점이다.

nam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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