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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한 민심, 아침잠 줄이고 교통지옥 퇴근길을 뚫었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경기도 분당의 한 학교 건물 앞에는 투표 시작 시간인 6시 전부터 몇몇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른 아침 서울 광화문이나 강남까지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이들은 한 손에 주민등록증, 다른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10분 늦게 출발하면 30분 넘게 지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투표는 해야죠”라고 말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이들은 투표장 풍경이 담긴 셀카를 찍고 트위터에 올린 뒤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을 향해 종종 걸음을 옮겼다.

이번 4ㆍ27 재보선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민심 이반으로 요약된다. 특히 전통적인 텃밭으로 분당을에서 승리를 예상했던 한나라당이 그간의 여론조사 결과를 뒤엎는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전세값과 물가 폭등에 분노한 수도권 중산층과 직장인들의 성난 민심이 적극적인 투표로 이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들은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아침 잠을 줄였고, 막히는 퇴근길을 뚫고 투표장을 향했다.

선거가 치뤄진 27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온통 선거 이야기로 도배됐다. 몇몇 지역에서 간헐적으로 치뤄지는 재보궐선거임에도 온라인 세상의 열기는 총선이나 대선 못지 않았다. “재보선 지역에 사시는 이웃분들, 투표 하실거죠? 투표 안 하실 이웃은 저를 언팔해주세요” (시골의사 박경철), “아직도 시간은 충분합니다. 투표만복래” (소설가 이외수) 같은 유명 인사의 투표 독려글에 자신의 얼굴 사진과 함께 “투표 인증샷 ^^ 투표 꼭 하세요”, “비루한 얼굴이지만 투표를 독려하고자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같은 일반인들의 인증글이 연달아 달렸다.

이 같은 인증샷 놀이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평소 ‘소통 부재’, ‘4대강 반대’ 같은 반 정부 성향의 단문을 넘어 “자고 일어나니 전세값이 5000만 원 올랐다”, “기름값 때문에 출퇴근이 겁난다”같은 생활 채험에 기반한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넘쳐났다. 특히 20대부터 40대 사이 젊은 넥타이부대의 비판 의식이 눈에 띄었다. 세금과 기름값, 전세값이 특히 민감한 이들은 선거 전부터 온라인상에서 현 정부 비판을 넘어 변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형성해 나갔다.

회사에서 출근 시간을 조정해 아침에 투표할 수 있었다는 한 30대 초반 여성은 “이유를 말 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는 꼭 한 표 권리를 행사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또 아이들이 등교를 마친 점심시간 전후에는 가벼운 옷차림의 주부들이 투표장에 대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 역시 “하루가 다르게 오르기만 하는 물가와 전세값이 걱정”이라며 “이번 선거를 통해 변화를 기대한다”는 희망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시간대별 투표율에서도 이 같은 넥타이부대, 그리고 젊은 층의 분노와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최종 투표을 49.1%를 기록한 분당을에서 오전 6시부터 9시 사이 투표율은 10.7%였다. 직장인들 상당수가 평소 재보궐 선거와는 달리 이른 아침에 투표소에 들러 권리를 적극 행사했다는 의미다.

<최정호 기자@blankpress>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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