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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보훈처, 5월의 독립운동가 어윤희 선생 선정
국가보훈처는 광복회ㆍ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3ㆍ1운동 당시 개성에서 만세시위 주도 후 체포돼 옥고를 치르고 신간회와 근우회 개성지회 창립 및 주역으로 활동한 어윤희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어 선생은 1881년 충북 충주군 소태면 덕은리 산골에서 태어나 1894년 결혼했지만 남편이 동학군이 되어 전사하자 10여 년간 황해도 평산, 해주 등지를 전전했다. 이후 경기도 개성에 정착한 후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인 정춘수의 설교에 감명 받아 기독교에 입문하고, 1909년 6월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 갬블에게 세례를 받았다. 미리흠 여학교에서 공부했고, 호수돈여학교에 입학해 1915년 서른다섯의 나이에 졸업했다. 이후 전도부인이 되어 애국계몽운동가로 거듭나게 됐다.

1919년 전민족적 항일투쟁의 추진체였던 민족대표들은 종교조직 및 학생조직을 통해 3ㆍ1운동의 지방 확산 및 대중화를 계획했다. 당시 개성의 여자성경학원 기숙사 사감을 지내던 선생은 조선독립선언서 80매를 받아 개성 읍내에서 배포하는 등 개성지역 3ㆍ1운동의 도화선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곧바로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4월 11일 보안법위반으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 몸은 비록 갇혔으나 유관순 등 옥중의 동지들과 함께 3ㆍ1운동 1주년 기념 만세투쟁 감행하는 등 옥중에서도 일제에 항거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듬해 4월 28일 출옥 후에도 개성에서 전도부인으로 활동하면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신앙 이외에 민족의식 고취와 계몽교육활동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1920년 7월 15일 개성여자교육회 창립에 동참해 국권회복과 여성의 권익 신장을 목표로 강연 활동을 전개해 민족운동의 여성지도자로 역할을 다했으며, 1920년 12월 경성에서 개최된 제1회 남감리회여선교대회에서 부회장으로 피선되어 독립군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의 측면 지원에 앞장섰다.

1927년을 전후해 민족운동 역량강화를 위한 중심기구의 단일화 움직임이 가시화 되고, 신간회가 출범하자 신간회 개성지회 설립 준비 단계부터 간사로 참여해 1931년 1월 임시대회 준비 및 해소까지 활동했고, 1929년 6월 15일 근우회 개성지회 창립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여성계몽과 교육을 통한 민족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31년 5월 신간회해소 이후 아동복지활동에 헌신하면서 일생동안 민족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김대우 기자@dewkim2>김대우기자dew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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