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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수한 글맛으로 그려낸 작가들의 초상
배고팠던 어린시절

별 따달라 보채던 고은


‘황구라’로 통하는 황석영

실은 ‘믿어도 좋은 사내’


살 부대끼며 어울린 경험

작가 21명 인물평에 담아


이문구(1941~2003)를 읽는다는 건 아늑함과 아득함 사이다. 우리말의 맛깔스러움을 만나는 고향집 같은 아늑함이 있지만 이젠 따라잡기 어려운 말, 잃어버린 말, 오염된 말들 속에서 그 거리가 아득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말의 품격과 품새를 보여주는 그의 걸쭉한 입담과 구수한 가락, 해학을 맛볼 수 있는 절판된 ‘이문구의 문인기행’(에르디아)이 재출간됐다.

김동리, 고은, 서정주, 황석영, 박용래, 조태일 등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21명의 작가를 이문구는 은근하며 멋스럽게 조명한다. 인물평이라면 ‘그 다움’이란 게 집혀야 마땅할 터. 그런 면에서 이문구는 예리하고 밝다.

김동리의 제자로, 그를 오래 모시고 문단 일을 도우며 보아온 김동리의 일화와 모습은 그의 문학과 성품을 드러내줄 뿐 아니라 하나하나가 귀한 사료다. 김동리의 주위에는 늘 문객과 식객이 들끓었다. 이문구는 그런 선생이 예기치 않은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스러워 식객 정리를 진언했다. 그러나 김동리는 오히려 “그 사람 요새 사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본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며 타일렀다. 김동리가 문협 부이사장 겸 월간문학지 주간을, 이문구가 사무일을 볼 때 일화도 담았다. 어느날 허름한 노인 하나가 들어왔다. 어디 잘못 찾아온 행려병 노인으로 여기고 시선을 돌리려는데 김동리가 자리에서 뛰어나가 노인을 반겼다. 안부를 여쭙고 자리로 깍듯이 모셔 인사를 시킨 분은 방인근 선생이었다. 김동리의 지시로 이문구는 4년 동안 이런저런 명목을 만들고 자신의 월급을 잘라내면서까지 방인근에게 매달 5000원씩 보냈다.

시인 고은에 대한 얘기는 알 것 모를 것 없이 지내온 사이면서도 행장기를 쓴다는 난처함에 대해 먼저 털어놓는다. 그는 일부러 안성 고은 집을 찾아가고 모친을 만나 시인을 좀 더 깊게 이해하려 한다. 모친을 통해 처음 드러난 시인의 면서기 경력, 배고픈 시절 별을 따달라고 울어 보챘다는 시인의 남다른 어린시절, 출가해서 지내던 때 찾아간 아버지를 매몰차게 돌려보낸 얘기 등이 흘러나온다. 환속하자 가짜 고은들이 판쳤다. 경찰의 힘을 빌려 가짜 고은 한 명을 잡았는데, 경찰서에 출두해보니 가짜 고은의 진짜 아내가 나와 감옥을 안 가게 해달라며 훌쩍거려 위로하고 돌아왔다는 얘기도 있다.

안동의 촌생원으로 그려진 소설가 김주영이 문단 추천을 해준 김현승 선생댁에 굴비 한 두름을 갖고 찾아갔다가 시집간 딸에게 가지고 가야겠다며, 다섯마리를 뽑아간 일화는 듣기 어려운 얘기다.

인물평은 객관적 사실과 작가의 경험이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문구식 글맛은 살을 부대끼며 오래 어울렸던 개인적 경험에서 느껴진다. ‘황구라’로 입소문 난 소설가 황석영에 대해 그는 한 마디로 표현하기 가장 알맞은 말이 있다면, ‘믿어도 좋은 사내’가 아닐까 한다며, 그의 삶, 글, 됨됨이 등 여러모로 믿어도 좋다는 뜻이라고 주를 달았다. 이문구의 박용래 시인에 대한 인물평은 한 인간에 대한 깊이있고 따뜻한 시선과 입체적인 관찰의 결정체다. “그는 조상 적 이름의 풀꽃을 사랑하여 풀잎처럼 가벼운 옷을 입었고, 그는 그보다 술을 더 사랑하여 밥상의 푸성귀를 그날치의 꿈이 그려진 수채화로 알았고, 그는 그보다 시를 더 사랑하며 나날의 생활을 시편의 행간에 마련해두고 살았다…. 달팽이집이라도 머리만 디밀 수 있으면 뜨락에 풀포기를 길렀고, 저문 황톳길 오십리에도 달빛에 별발이 어리면 뒷덜미에 내리던 이슬조차도 눈물겹도록 고마워하였다.”

문인 한명 한명의 초상화가 이문구의 터치로 완성되는 느낌이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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