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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력 고갈?그러면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찾아야죠!"
오늘의 시대가 ‘디자인의 시대’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 심지어 지방자치단체까지도 너나없이 디자인을 목청껏 외치니 말이다. 20세기 들어 고루함을 벗는 ‘근대성’을 상징해오던 디자인은, 새 밀레니엄에 접어들며 새로운 정의가 필요해졌다. 디자인을 제품이나 공간을 세련되게 장식해주는 것쯤으로 여기는 좁은 고정관념 또한 수정이 필요하다.

‘2011 광주 디자인비엔날레’에 가면 디자인의 그 풍부한 결들과 새롭고 놀라운 변주를 원없이 음미할 수 있다. 즐겁고 신명 나는 해석과 발언이 흘러넘친다. 비엔날레 전시장에는 ‘몰입 가상환경’이 만들어졌는가 하면, 음식 커뮤니티도 조성됐다. 독일 작가들은 의회, 예배당, 극장을 뒤섞어 일하고 쉬고 토론하는(그러나 가끔은 의도적으로 그러지못하게 하는) ’현장 허브’를 꾸며 놓았다.

오는 10월 23일까지 52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한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도가도 비상도(圖可圖 非常圖)’.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ㆍ길을 길이라 말하면 그것은 길이 아니다)’의 도(道)에 도(圖)를 슬쩍 대입시킨 승효상 총감독(건축가)은 “이번 비엔날레는 ‘이름’과 ‘장소’를 키워드로 삼았다”며 “모두가 알아모시는 ‘이름 있는 디자인’과 일상에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름 없는 디자인’을 함께 주목했다”고 밝혔다. 또 “디자인에 있어 장소성의 의미도 짚어봤다”고 덧붙였다. 



44개국에서 133명의 작가와 73개 기업이 제작한 총 131점의 출품작은 모두 4개의 전시장(비엔날레 시티)에 나뉘어 설치됐다. 즉 ▷클러스터 시티 ▷네트워크 시티 ▷랜드스크립트 시티 ▷그리드 시티가 그것.
비엔날레관 앞마당에는 승효상 감독과 함께 공동 감독을 맡았던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ㆍ54)의 초대형 설치작품 ‘필드’(115x740x740 cm)가 놓여 있다. 비록 한국을 찾진 못했으나 그의 작품과 그가 큐레이팅 전시는 큰 이슈를 던지고 있다. 작품 ’필드’는 중국 명나라 초기 스타일의 청화백자 당초문 도자기로 현대 건축공사장의 반복되는 비계 구조물을 만든 것. 전통과 현대를 가로지르며 도시와 사회의 변화과정을 성찰한 장중한 실험이 가히 압도적이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파는 다양한 건강음료 77종을 수거해 이를 혼합한 음료 앰풀을 관람객에게 나눠주는 퍼포먼스 작업 ‘에너지’(박미나,사사(44) 등),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에 딱 제격인 친환경 자전거 보관시설 ‘바이크 행어’(안지용 & 이상화) 등 참신한 작업도 눈길을 끈다.

해외 작가들의 작업 또한 무릎을 치게 하는 획기적인 작품이 여럿이다. 길이 30m에 이르는 긴 벽에 각 종목 운동선수의 다양한 체형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운동선수 신체 디자인’은 너무나 다채로운 스포츠 종목별 선수들의 훈련 방식과 진폭이 엄청난 식단이 공개돼 경이감을 준다. 최초의 ‘제로 에너지’ 마을을 소개한 ‘슬레이브 시티’와 다양한 사제 폭탄의 제작법을 세밀하게 소개한 ‘급조 폭발물 장비’, 이집트의 비폭력 시위자들이 몸을 다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떻게 대치하는지를 보여주는 ‘비폭력 혁명 디자인’은 디자인의 놀랍고 너른 지평을 보여준다. 비영리단체인 독일 데저텍재단의 ‘대륙 횡단 에너지 망’ 또한 흥미롭다 .



올해 디자인비엔날레에는 광주시 금남로 등 구도심에 예술적인 소형 건축물을 짓는 광주 폴리(Folly) 프로젝트가 추진돼 화제를 모았다. 후안 헤레로스, 플로리안 베이겔, 나데르 테라니, 알레한드로 자에라 폴로, 조성룡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옛 광주읍 성터를 중심으로 10곳에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지었다. 이들 거장이 일제히 한국의 광주에 출몰하는 것 자체도 큰 화제를 모아, 영국 ‘가디언’, 미국 ‘로스앤젤리스 타임즈’, ‘도무스 매거진’ 등 유수 매체의 기자들이 개막식을 즈음해 광주를 직접 찾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이화여대 캠퍼스 콤플렉스를 설계한 도미니크 페로는 광주 구시청사거리에 한국 고건축의 기둥과 누각, 처마를 차용한 ‘Tne Open Box’를 설치했고, 요코하마 국제여객터미널로 널리 알려진 알렉한드로 자에라 폴로는 금남로공원에 ‘유동성 조절’이라는 작품으로 5ㆍ18 민중항쟁 현장을 현대의 삶의 공간과 연결시켰다. 스페인 출신의 후안 헤레로스는 장동사거리에 조명과 음향, 난방, 와이파이(WiFi) 기능이 탑재된 구조물 ‘소통의 오두막’을 선보여 지루한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놓치면 후회할 작품 10점’까지 꼽으면서 여러 출품작들의 신선함과 완결성에 지지를 보낸 승효상 감독은 “지금까지의 비엔날레가 볼거리를 늘어놓는데 치중했다면 이번 비엔날레는 ‘생각하는 전시’인 것이 다르다. 또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함께 고려했으며, 인간과 디자인, 인간과 아이디어가 어떻게 만나고 연결되는지 살펴봤다"고 밝혔다. 



또 "세계적 건축가들이 건립한 ’광주 폴리’는 비엔날레가 끝난 뒤에도 계속 남을 것"이라며 작은 시설물이지만 주변의 문화적 생성을 촉진하고, 연관 기능을 지속적으로 유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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