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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7층 건물 옥상에 ‘배’를 띄운 건축거장의 발상
건축가들은 이제 더 이상 건축가가 아니다. 권력이다. 그것도 ‘슈퍼 권력’이다.

세계 디자인계는 건축가들의 손아귀에 들어온 지 오래다. 모두들 초특급 건축가들을 잡기 위해 목을 매고 있다. 그들은 건축물을 세우려는 기업이나 기관 뿐 아니라, 럭셔리한 부틱을 만들려는 명품브랜드, 초특급 호텔, 자동차업체, 가전및 가구업체, 잡화업체로부터 끝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머드한 교량을 건설하려는 지방자치단체며 레스토랑, 심지어 주방용 세제 제조업체까지도 이들과 선을 대기 위해 바쁘다.

크게는 초고층 빌딩과 교량, 작게는 손톱 만한 브로치까지 건축 거장을 필요로 하는 곳은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건축가들은 기존의 진부했던 디자인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규범을 뛰어넘는 ‘의외의 디자인’을 제시하기 때문에 늘 영입의 대상이다. 



서울시가 야심작으로 펼치고 있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설계 중인 이라크 출신의 세계적인 여성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그렇고, 스페인 빌바오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설한 프랑크 게리가 그렇다. 명품업체 프라다의 ‘정신적, 예술적 지주’로 불리며 미국LA와 도쿄의 프라다 플래그십 매장을 성공적으로 설계한 렘 쿨하스(서울에선 ‘프라다 트랜스포머’를 진두지휘했다)가 그렇다.



이들은 모두 세계 디자인계의 최고 권력이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건축계 뿐 아니라 전 세계 문화예술계, 산업계의 큰 주목거리다. 이들 예술 거장과 디너를 함께 하는 이벤트의 티켓은 수백만, 아니 수천만원에 판매되곤 한다. 특히 자하 하디드라든가 피터 아이젠만 같은 경우 한번 모시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슈를 모으는 건축가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프리츠커(Pritzker)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다. 그러나 하디드는 뛰어난 건축가일 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활약하는 디자이너다. 그가 디자인한 용품들은 지극히 파격적이면서도 우아하다. 세계적인 크리스탈브랜드 스와로프스키를 위해 하디드가 디자인한 목걸이는 특유의 유려함과 강렬한 카리스마로 건축적 미감을 내뿜는다. 그는 ‘명품의 황제’ 루이비통이 핸드백 디자인을 의뢰하자 가장 값싼 공업용 소재인 실리콘으로 백을 만들어 의표를 찔렀다. 그러나 이 가방은 유려한 곡선이 살아 있어 ‘역시 그답다’라는 찬사를 모았다. 라코스테를 위해 디자인한 부츠 또한 파격을 감행하면서도 격조를 잃지 않고 있다. 이같은 비정형성은 압도적인 예술적 아우라를 풍긴다.

이스라엘 출신으로 늘 엉뚱한 모자를 쓰고 다니는 괴짜 건축가 론 아라드, 터프한 외모와는 달리 럭셔리한 공간 설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국 건축가 피터 마리노 또한 하디드에 필적할 만한 건축가다. 이들은 너무나 많은 업체와 기관으로부터 각양각색의 프로젝트 제안을 받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공간및 조형물 디자이너이자 의자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치는 론 아라드는 최근 서울 신도림역에 조성된 ‘대성디큐브시티’에 첨단 LED조형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의 오리지날 의자는 작품에 따라 한 점에 수천만, 수억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베이프론트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를 디자인한 모쉐 사프디(Moshe Safdie)가 화제다. 이스라엘 출신의 건축가로 하버드대 교수를 역임한 모쉐 사프디는 이 복합 리조트로 ‘아시아의 레저 판도를 일거에 바꿔 놓았다’는 평을 들었다. 가공할 만한 능력이자 파워다.


‘마리나 베이 샌즈호텔’은 압도적인 디자인으로 건축계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샌즈 호텔은 건물 3개동(지하3층~지상 57층)이 ‘입(入)’자 모양으로 맞대어 있는 디자인인데 이는 피사의 사탑(5.5˚)보다 약 10배 더 기울어져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화되면서 ‘기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57층 위 옥상 끝자락에 세워진 초대형 수영장(Sky Park)은 전 세계를 들끓게 했다.

사프디는 “새로운 건축아이콘을 원했던 샌즈그룹의 셀던 아델슨 회장 또한 건물 위에 배처럼 스카이파크(Sky Park)를 얹어놓은 설계안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결국은 실현돼 요즘은 ‘그 57층의 아찔한 수영장에 한번 가 보자’란 말이 유행 중이다”고 말했다.



이렇듯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은 성역이 없이 오늘도 전 세계 디자인의 최전방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 슈퍼권력들이 디자인한 많은 것들은 오늘 우리의 안방까지도 깊숙이 파고드는 중이다. 바야흐로 건축가의 시대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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