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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심한 풍경…그 안에 어른대는 현실
‘격정적 리얼리즘’작가 최진욱 일민미술관 초대전
‘서울의 서쪽’등 구작부터

신작 ‘북아현동’까지


정교하지 않은 선·터치

어울릴것 같지않은 조각들

한 화면 안에 모두 담아내


경직된 사고체계서 해방

유연함 향해 쉼없는 도전



최진욱(55ㆍ추계예술대 교수)은 우리 미술계에서 몇 안 되는 리얼리즘 화가다. 그러나 그의 리얼리즘은 조금 다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리얼리즘을 풀어간다. 미술평론가 심광현은 그의 리얼리즘을 ‘격정적 리얼리즘’으로 칭한다. 

그가 서울 신문로 일민미술관(관장 김태령) 초대로 개인전을 개막했다. ‘최진욱-리얼리즘’이란 타이틀로 오는 11월 27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기량 뛰어나고, 문제의식 있으며, 작업도 독특하지만 일반에겐 별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진면목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자리다.

최진욱의 그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젊은 시절 자전거라는 사물을 시작으로 화실 풍경, 수업 풍경, 동네 풍경, 경복궁을 그렸다. 누구나 접하는 풍경들이다. 그런데 그의 그림은 대중적 기준으로는 썩 잘 그린 풍경은 아니다. 선은 거칠고, 터치는 정교하지 않으며,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장면들이 함께 들어차 있다. 편한 그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그림은 회화의 종말인가? 회화의 회복인가? 그도 아니면 무엇일까?

최진욱의 회화는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알쏭달쏭하다. 그는 그림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경직된 사고 체계를 흔들어, 보다 유연하고 변화무쌍하게 전환시키고 싶어한다.

전시에는 작가 삶의 터전인 서울 북아현동(직장이 있는 곳)을 그린 신작들과 함께, 그가 회화 본질의 유연함과 사고의 유연함을 추구하며 고뇌했던 흔적들을 보여주는 작품이 다채롭게 나왔다. 또 자신의 모습을 화실 공간, 깨진 거울 속에 투영시킨 독특한 형식의 자화상까지 내걸려 최진욱의 회화적 서술 방식의 변화 과정도 볼 수 있다.

가을 단풍이 든 서울 홍은동 언저리의 풍경을 독특한 필치로 그린 최진욱의‘ 서울의 서쪽’. 도시의 삶과 세월의 흐름을 되돌아보게 하는 회화다.                            [사진제공=일민미술관]

출품작은 구작과 신작이 망라됐다. 과거작 중에는 ‘할아버지 말씀’(1991), ‘아침이슬’(1993), ‘동북아문화-정체성’(1997)처럼 이데올로기적 개념이 드러나는 작품이 아닌, 상대적으로 무심(無心)한 듯한 작업이 주로 선정됐다. ‘연희동 습작’(1991), ‘서울의 서쪽’(1994), ‘나의 생명’(2004) 등이 나왔다. 아울러 자화상 작업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작가의 기술(記述)적 변화도 조망했다.

김태령 관장은 “최진욱에 대한 기존 미술계의 경직된 평가에서 벗어나, 최진욱 회화 본질의 유연함, 사고의 유연함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최진욱의 그림은 대체로 무심하다. 무심한 초상이자, 무심한 풍경이다. 무심한 작업이지만 현실의 정수가 풍부하게 담아냈다. 사회적 리얼리즘이 오롯이 잠재돼 있다. 목청 높여 문제의식을 드러내진 않아도 그의 심상찮은 그림 저변에는 우리의 초상과 우리의 실존이 탄탄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 그의 신작 ‘상해임시정부’, ’북아현동’ 등이 있다. 신작들은 작가가 꿈꾸는 ‘깊이 있는 미(美)적 드러냄’을 보다 활기차게 드러내 주목된다.

서울대 미대와 워싱턴DC의 조지워싱턴대학원을 졸업한 최진욱은 지난 25년간 민중미술 진영에도, 모더니즘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채 독자적 행보를 걸어왔다. 그는 리얼리즘으로 모더니즘을 말하고, 모더니즘으로 감성을 추구해왔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동네 어귀를 무덤덤하게 그린 최진욱의‘ 엄마와 아들’.

미술평론가 심광현 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진욱은 예술과 사회, 예술과 정치, 추상과 구상, 생태주의와 현실 참여 속에서 지그재그 운동을 반복했다. 동일한 듯 보이지만 동일하지 않은 반복을 통해 변증법적 변화가 생겨나는 과정, 이를 통해 최진욱 고유의 리얼리즘이 형성된다”고 평했다.

최진욱은 가슴 벅찬 세상의 리얼리티를 물고기 낚듯 신명 나게 건져 올리며 ‘그림의 시작’을 알렸다. 그의 감성적 리얼리즘, 신비하고도 과학적인 그림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그 대담한 선언(91년 개인전) 이후 ‘생생한 느낌’은 지속되지 못하며 잊히는 듯했다. 회화와 생활 사이의 괴리, 그로부터 발생하는 정신적ㆍ감성적 황폐함을 겪은 작가는 근래 들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지고 찢어진 리얼리티와 대면하며 이를 다시 담아내고 있다. 성실하고도 끈질긴 통찰의 궤적이 올곧게 쌓여가고 있다. (02)2020-2060

/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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