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는 데뷔 이래 일관되게 ‘가족과 사랑’을 주제로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찬 작품들을 제작해왔다. 데뷔 초 작가는 한지와 먹을 다루며 다분히 한국화적인 작업을 선보였다. 먹으로 담담하게 그려나간 초기작들은 소탈하면서도 풋풋한 서정을 담고 있다. 전시에는 그동안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작가의 초기 작업이 다수 내걸려 반가움을 전해준다.
1988년에 제작한 ‘부부’(한지에 수묵채색, 83×68㎝)는 가난한 커플의 신발을 그린 것이다. 결혼식 전날 아내와 자신의 벗어놓은 구두를 진솔하게 그린 그림은 보는 이의 가슴을 짠하게 한다. 첫 개인전을 즈음해 작가는 결혼을 했고,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아내의 아르바이트비가 수입의 전부였지만 두 사람은 행복했다. 작가는 이 무렵 작가노트에 “누가 이 천사를 내게 보냈을까?”라며 아내를 천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본향을 생각하는 나그네’(142×73㎝, 1999년)는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던 작가가 눈을 들어 바라본 새벽하늘을 순지에 수묵채색으로 그린 역작. 이 그림을 특별히 아끼는 작가는 그림을 볼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고백한다.
2001년 작인 ‘집으로’(150×211㎝)는 한지에 콩테와 목탄으로 그린 그림이다. 결혼 후 사랑스런 아이가 태어났고, 놀이터 정글짐에서 놀던 아이가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아이는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아 부부는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또 올렸다. 작품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여전히 놀이터에 있는 아들을 데리러 나간 아빠와 저녁을 준비하다가 두 사람을 찾아나선 엄마의 모습이 담겼다. 이렇듯 김덕기의 초기 작업은 작가와 아내의 신혼,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맞닥뜨렸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2003년 작인 ‘웃음소리-아름다운 순간들’(211×150㎝)은 신혼의 즐거움을 상큼하게 담은 작품. 작가가 준비한 커다란 꽃다발은 프러포즈의 순간부터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아내, 그가 일군 정원까지 이어진다. 꽃을 매개로 일상 속 아름다운 순간들을 포착한 것이다.
김덕기는 부친의 나이 67세에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그러나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팍팍한 학창생활을 영위해야 했다.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잠시 고교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 고향인 여주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요즘도 매일 집(반포)과 여주를 오가며 자신이 체험한 이야기들을 친숙한 조형과 밝고 강렬한 색감으로 화폭에 옮긴다.
최근 들어 작가는 더욱 밝고 화려한 원색으로 행복한 가족과 전원의 삶을 그린다. 햇살과 온기를 표현하기 위해 점묘(點描)법을 즐겨 쓰는데, 이는 작품에 활기와 리듬감을 더해준다. 김덕기는 “거미줄에 걸린 영롱한 이슬처럼 여주의 당우리로 작업실을 옮겨오면서 삶의 희열처럼 내게 ‘점’이 다가왔다”고 밝혔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붓질처럼 그늘없이 마냥 밝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우리 삶이 늘 그렇게 행복할 순 없지만 자신의 그림을 보고 많은 이가 위로를 얻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김덕기 작가의 초창기 먹 작업에서부터 최근 제작한 신작 유화작품 등 전 시기 다채로운 작품이 출품됐다는 점. 과슈, 오일파스텔, 수채화, 드로잉까지 작가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70여점의 그림이 나왔다. 특히 새롭게 선보여지는 파스텔 회화는 색채를 다루는데 있어 남다른 역량을 지닌 김덕기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작업이다.
갤러리 측은 세모를 맞아 관람객들을 위해 풍성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추첨을 통해 관람객에게 김덕기 작가의 오리지널 드로잉 작품 15점을 증정한다. 또 김덕기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콜라보레이션 상품(아트상품)을 한정판으로 제작해 전시 기간 내 판매한다. 아트상품 중에는 김덕기의 작품이 예쁘게 새겨진 시계, 마우스패드, 크리스마스카드 등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4일까지. (02)726-4428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김덕기가 점묘 기법으로 그린 신작 ‘가족-함께하는 시간’, Acrylic on Canvas, 3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