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우리 미술계에 싱그런 전시가 열린다. ‘한국의 피카소’ 김환기 화백이 2012년 새해, 푸르른 그림들로 우리 미술계를 활짝 연다.
전남 신안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안온한 대학교수 및 유명작가 자리를 마다하고, 이역만리 뉴욕의 작은 아틀리에에서 화폭 가득 푸른 점을 찍어가며 고국에의 그리움을 달래다 타계한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의 대표작을 모은 전시가 개막된다. 서울 사간동의 갤러리현대(대표 도형태)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전을 오는 6일부터 2월 26일까지 본관과 신관에서 연다.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환기가 우리 미술계에서 피카소에 종종 비견되는 것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데다 피카소처럼 다작을 했고,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혁신했기 때문이다. 생전에 유화 기준으로 3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김 화백은 이중섭(500여점 이하 추정), 박수근(200여점 추정) 등 동시대 작가들에 비해 일단 작업량에 있어 비교가 안 된다.
게다가 그의 작업은 한 곳에 고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수화는 구상과 추상을 가뿐히 넘나들며 한국의 미감을 아름답고도 서정적으로 형상화했다. ‘한국 모더니즘 1세대’ 작가로, 대상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 답습됐던 한국 근대회화에 ‘추상’이란 또 다른 세계를 확실하게 열어젖힌 개척자였던 것. 그는 일본, 프랑스, 미국 등에서 수학하며 접한 새로운 문화에 우리다운 것을 절묘하게 접목시켰다.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한 수화의 작품은 한국적 특성과 세계성을 온전히 겸비하고 있다.
일례로 ‘답교’라는 작품은 푸른 시냇물과 그 위의 다리, 쭉 뻗은 적송(赤松), 달, 인물을 한 화면에 독특하게 어우러지게 한 구도가 당시(1954년)로선 매우 혁신적이다. 원근법을 과감히 무시하고 구상과 추상, 정지와 움직임을 공존시킨 조형력 또한 돋보인다. 커다란 조선백자와 달항아리를 들고 있는 두 명의 여성을 화폭에 꽉 차게 그려넣은 1956년작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또한 수화의 남다른 역량을 엿보게 한다. 여인들 위로 매화가지를 역동적으로 배치한 솜씨는 절묘하다. 서양의 기법으로 동양의 정체성을 빼어나게 구사한 작업으로, 오늘날 어떤 작가도 흉내내기 어려운 면모다.
김환기의 작업은 크게 네 시기로 구분된다. 앞에 예로 든 작품들처럼 한국의 산과 달, 도자기와 매화, 사슴을 그린 ‘서울시대Ⅰ’(1937~56)과 ‘파리시대’(56~59)는 구상작업에 충실한 전반기에 해당된다. 이어 ‘서울시대Ⅱ’(59~63)과 ‘뉴욕시대’(63~74)는 전반기 구상작업이 ‘십자구도 회화’ 등을 거쳐 점, 선, 면만으로 이뤄진 추상작업으로 꽃피워진 후반기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초기 구상에서 후기 추상으로 이어지는 그 흐름이 매우 자연스런 통일감을 지니며 유연하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더구나 서양재료인 오일로 그린 그림임에도 후반기 작업은 기름기를 뺀 담백함이 동양적 우수와 정갈함을 잘 보여준다. 서양의 미술평론가들이 ’신비롭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 이 같은 요소로 인해 수화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 위상을 점하며 학술적으로도 연구대상이다. 아울러 3000점에 이르는 작품들의 수준이 대부분 고르고, 오늘 다시 봐도 완결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기에 모자람이 없다.
특히 1950년대 작업인 ‘달과 매화’ ‘산월’ 연작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서정미를 듬뿍 담고 있다. 푸른 바탕에 흰 백자 두 점이 보름달처럼 둥실 하늘에 떠있고, 그 위를 매화가지가 수직 수평으로 곧게 뻗어나간 ‘항아리’(1955,6년)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질 그림이다. 그 뿐인가. 뉴욕 시기 대표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0만개의 점’ 등은 하늘의 별, 사랑, 인간의 인연을 은유하는 푸른 점들이 화폭을 뒤덮은 전면화로, 수화 작업의 백미로 꼽힌다.
전국의 주요 컬렉터를 일일이 찾아가 설득한 끝에 작품을 빌려온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워낙 귀한 그림들이라 모두들 대여를 꺼렸다. 그래서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 없을 명품(名品) 국영문 화집을 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반강제로 작품을 빌려왔다"며 "앞으로 이같은 규모의 김환기 전시는 다시 꾸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미공개작 4점 등 엄선된 시대별 대표작 60여점이 본관과 신관을 수놓고 있다. 김환기 작품 중 골갱이만 추려 140여 점을 담은 국영문 도록(마로니에북스 펴냄)도 발간됐다.
갤러리현대 측은 두달에 걸친 전시기간 중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평론가, 작가, 미술관계자 등 전문가 100명과 일반관람객 10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선호하는 김환기의 대표작’을 조사해 발표할 예정이다.아울러 1월10일 오후 2시에는 유홍준 교수가 강의하는 ’특강:김환기’도 열린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종로구청이 후원했으며, 현대자동차그룹 효성 일진그룹 대륭건설 하나은행이 협찬했다. 매주 월요일및 설날 당일 휴관. 관람료 일반 5000원, 학생및 경로 3000원.문의 (02)2287-3500 <사진제공 갤러리현대>
<이영란 선임기자> /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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