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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가족 콘텐츠의 진화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빠른 스토리 전개와 강력한 흡입력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쓴 소설 <빅픽처>와 <템테이션>은 각각 번역돼 나온 2010년 6월과 지난해 9월 이후 매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정도로 한국에서도 큰 인기다. <빅픽처>는 지난해 교보문고의 소설 베스트셀러 부문에서 2위, 종합 베스트셀러 부문에서 7위를 기록했다. ‘힐링’이나 ‘멘토’를 주제로 한 에세이류와 자기계발서가 주종을 이루는 요즈음의 한국 독서 풍토에서 소리없이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소설이다.

<빅 픽처>는 자신이 원하는 사진가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던 한 남자의 ‘엽기적인’ 이야기이고, <템테이션>은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의 성공과 파멸, 그리고 진정한 자아의 발견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여기엔 공통점이 있다. 사회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가족관계가 파국을 맞으면서 주인공의 삶이 파멸로 급속히 추락한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가족은 삶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플라이트>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알콜과 약물에 중독된 한 비행기 조종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과도한 음주가 발단이 되었지만, 여기서도 가족과의 불화와 관계의 단절이 탁월한 조종사였던 주인공의 삶을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기저에 깔려 있다. 여기서 가족은 추락의 요인이기도 하지만, 구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가족은 한국에서도 최고 인기있는 대중문화 콘텐츠 소재다. 5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내딸 서영이’나 종편 드라마로선 유일하게 10%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무자식 상팔자’는 가족 관계의 재편에 관한 이야기다. 주말 예능 ‘아빠 어디가?’는 가족의 재발견을 보여주며, 기적같은 흥행을 기록중인 ‘7번방의 선물’은 딸과 장애인 ‘딸바보’ 아빠의 눈물겨운 이야기다.

가족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은 공동체 붕괴가 가속화하고 사회가 파편화해 이제 한국에서도 가족이 마지막 의지처 혹은 최후의 안식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이전에도 대중문화 콘텐츠의 단골메뉴였다. 최근의 콘텐츠가 다른 점은 기존의 가부장적 위계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통이 단절된 서열 중심의 기존 가족 관계는 끝없는 갈등과 삶의 위기를 유발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지지하는 평등한 관계가 진정한 구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또 혈연 중심의 가족을 뛰어넘어 따뜻한 사랑과 돌봄이 있는 넓은 의미의 친밀공동체가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여주듯, 한국에서의 가족과 친밀공동체가 위기에 처한 한국인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로 인식되고 있다.

맹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겨울이 물러나면서 이제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있다. 주말엔 더 따뜻해진다고 한다. 교외로 나가 혈연 가족이나 친밀공동체 구성원과 손잡고 봄바람을 맞아보는 것은 어떨까. 함께 극장이나 박물관으로 나들이를 가는 것은 어떨까. 제2 한강의 기적이니, 국민행복이니 하는 공허한 거대담론의 홍수에서 벗어나 진짜 사랑을 느끼고 싶다.

이해준 문화부장/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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