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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도때도 없이 뮤지컬 이야기, 그게 너무 좋아”
연출 이지영·안무 문병권 부부 인터뷰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로 호흡
집요하고 치밀하게 매만진 수작 주목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최고 파트너죠”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의 부부 제작진, 이지영 연출가와 문병권(왼쪽) 안무감독이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거실 한복판. 싱크대 선반으로 뚝딱뚝딱 만든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의 미니어처 무대를 두고 부부는 매일 같이 머리를 맞댔다. 두 남녀 배우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할 길쭉한 턴테이블 무대.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남녀의 이야기를 하나씩 피워냈다.

“어느 날엔 자다 일어났는데, 아내가 어떤 음악을 듣더니 그걸 24시간 내내 듣는 거예요. 하나의 주제에 꽂히면 시도 때도 없이 그 이야기만 꺼내고요. 전 그게 너무 좋아요(웃음).”(안무가 문병권)

‘일’로 만나 ‘평생 함께’ 사는 사이가 됐다. ‘천생연분’, ‘환상의 짝꿍’, ‘영혼의 단짝’.... ‘연인’, ‘부부’를 수사하는 세상의 모든 언어를 조합해도 두 사람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아쉽다.

심지어 MBTI마저 똑같은 소울메이트. ‘아이디어 뱅크’이자 ‘문제 해결 능력’이 탁월한 INTP다. 그러니 두 사람이 만나면 무슨 일이든 일사천리다. 최근 만난 연출가 이지영(45)·안무가 문병권(47) 부부 이야기다.

이번 무대는 두 사람에게 매우 특별하다. 아내의 ‘입봉작’이기 때문이다. 2003년 뮤지컬 신시컴퍼니 연출팀에 공채로 입사한 이지영은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로 21년 만에 단독 연출을 맡게 됐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한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집요한 연출가-안무가 부부의 수작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4월 7일까지·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2인극이다. 주인공인 20대의 두 남녀의 별다를 것 없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지만, 이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독특한 구성과 연출 덕이다. 남자의 시간은 첫 만남부터 이별을 향해 순차적으로 흐르고, 여자의 시간은 이별부터 첫 만남을 향해 거꾸로 이어진다.

무대 곳곳에는 집요한 연출가와 안무가 콤비가 만든 ‘치밀한 전략’이 촘촘히 흐른다. 애초 원작에서는 남녀 배우가 번갈아 등장하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두 배우가 퇴장 없이 공존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원작을 뒤바꾼 것은 이지영의 아이디어다.

그가 브로드웨이 원작을 무대에 올리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공감’이다. 유대인 남성과 비유대인 여성이라는 원래 설정을 지우고,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모두 뜯어 고쳤다. 그는 “(원작은)사건부터 감정까지 모두 가사로 설명돼 있는데, 영어와 우리말이 언어적으로 다르다 보니 이를 매끄럽게 작업하는 게 필요했다”며 “미국적 감정과 문화 차이 역시 어색하지 않게 매만졌다”고 말했다.

아내의 심적 부담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은 든든한 조력자였다. 사실 그는 ‘아이다’, ‘브로드웨이 42번가’처럼 화려한 칼군무의 장인이지만,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에서는 눈에 띄는 안무보다 모든 움직임에 스토리와 감정을 실어내도록 구성했다.

무대에서 춤을 추는 주인공은 배우만이 아니다. 두 남녀를 비롯해 그들이 움직이는 동선, 그에 맞춰 이동하는 2개의 턴테이블 역시 댄서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문병권은 “각기 다른 시간대로 움직이는 두 남녀처럼 턴테이블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도록 했다”며 “넘버마다 이 가사에서 저 가사로 넘어갈 때 (턴테이블 위치도)딱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때때로 초수(秒數)가 맞지 않아 고생을 했다”며 웃었다.

배우들의 모든 움직임에 사랑과 이별의 감정, 스토리를 불어넣은 것도 문병권의 몫이었다. 이지영은 “현실적인 이야기와 음악 안에선 배우가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며 “보다 우리의 이야기로 마주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최고의 파트너...“휘둘리지 않는 창작자가 꿈”

거꾸로 흐르는 남녀의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딱 한 번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옷깃을 스치며 감정을 교류한다. 연인이라면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 장면에서다. 이 신의 연출과 움직임은 독특하다. 물 위에 떠있는 다리처럼 위태롭고 불안하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섬이 만나는 것처럼 두 테이블을 연결했다. 이지영은 “첫 만남, 결혼의 설렘을 너무나 예쁘게 담아냈다”며 “각자의 섬에서 이어져 하나가 되고, 다시 각자의 섬으로 남게 되는 과정이 아주 예쁜 사랑의 한 장면으로 담겼다”고 했다. 이지영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뮤지컬은 이들 부부에게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됐다.

이지영은 “두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두 세계가 충돌하는 것”이라며 “이 작품을 하면서 우리 사이도 돌아봤다. 이러다 ‘이혼하는 거 아니냐’ 할 정도로 사랑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말했다.

그런 아내에 대해 남편 문병권은 “늘 자신이 설득돼야 다른 사람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언제나 본인 설득을 치열하게 한 뒤에 작품을 직조해 나간다”고 답했다.

이 공연을 마치고 나면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갈 예정이다. 문병권은 ‘알라딘’, 이지영은 “결정됐지만 공개 전의 작품”을 통해 다음 활동을 이어간다. 각각 “애석하게도 차기작은 찢어지지만(이지영)”, “이혼은 무슨, 계속 같이 하고 싶다(문병권)”는 마음을 털어놨다. 이에 대해 이지영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취향과 마지노선을 알고 있어 허용 범위의 선을 결코 넘지 않는 찰떡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 열심히 살면서 게으른 안무가가 되고 싶어요. 너무 많이 소비하듯이 끄집어내지 말고, 주어지는 대로 살면서 이 안에서 응축해 성의껏 우리 이야기를 꺼내놓자고요(문병권).”

“화려함에 휘둘리지 말고 온전히 드라마를 전달하는 연출가, 안무가가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눠요.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지 모르는 현장이니 소중하게 접근해야죠(이지영).”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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