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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다울·박우재가 연주하는 두 대의 거문고…“우주 탐사를 위해 떠난 보이저 1, 2호” [인터뷰]
박다울 박우재 ‘검고막다른’
4월 19~20일, 대학로극장 쿼드
같은 악기, 다른 곳으로 향한
두 세대 거문고 연주자의 만남  
“새로운 전통으로의 전환과 실험”
일면식도 없었지만, 박우재 박다울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봤다. ‘같은 악기’를 다룬다는 교집합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동질감과 정서로 이어지며 이들을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엮었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우주 탐사를 위해 떠난 보이저 1, 2호는 멀리서 볼 땐 지구에서 멀어지는 두 개의 점이지만, 사실 그 둘은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어요. 그것이 우리 두 사람이에요.” (박우재)

‘검고 막다른’ 세계에서 두 연주자가 만났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같은’ 악기를 다루며 ‘새로움’을 찾아 나선 사람들. 두 사람의 조합엔 특별한 파격이 담겼다. 좀처럼 시도된 적 없는 거문고 두 대의 만남,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나선 두 세대 음악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43)와 박다울(32)이다.

두 사람은 서울문화재단 ‘쿼드초이스’의 일환으로 ‘검고 막다른’(4월 19~20일, 대학로극장 쿼드)이라는 제목의 공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제게 (박)다울씨는 젊고 끝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이었어요. 새로운 사람과 새로웠던 사람이 만나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보자 한 거죠.” (박우재)

일찌감치 전통 음악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창작 음악 앙상블 ‘바람곶’, 거문고와 전자음악이 만난 프로젝트 그룹 ‘무토(MUTO)’는 물론 솔리스트로의 음악적 실험을 이어온 박우재와 ‘슈퍼밴드’(JTBC)를 통해 거문고의 편견을 부수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파격의 아이콘’ 박다울. 두 사람은 고정된 형식에 갇히지 않고, 안락한 울타리를 뛰어넘어 황무지를 개척했다.

최근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만난 박우재는 “염려가 됐던 것은 새로움을 추구했지만, 나이가 들며 기존의 것이 돼가는 내가 과연 이 사람의 새로움을 따라갈 수 있을까, 이 사람의 아이디어들을 흡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박다울 박우재 [서울문화재단 제공]
누군가의 꿈이자 미래…두 거문고 연주자의 필연적 만남

“근데 이건 나도 포기를 못하겠어요.” (박우재)

창과 방패처럼 팽팽히 맞섰다. 근사하게 다시 태어난 ‘새’(박우재 작곡) 연주를 마치고 난 상황. 이 곡에 노래를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두 사람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감성적인 계획형’ 박우재와 ‘이성적인 즉흥형’ 박다울이 만나니 서로의 논리도 흥미롭다. “아름다움을 향해가기 위해 노래가 필요하다”는 박우재와 “그것엔 동의하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박다울의 대립이었다.

박다울은 연습을 마친 뒤 “공연으로 다가갈수록 서로 치열해지는 순간들이 있다”며 “더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는 방향의 중간 지점”이라고 했다.

소위 MBTI ‘골든 페어’로 불리는 INFJ(박우재)와 INTP(박다울)인 그들은 일면식도 없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봤다. ‘같은 악기’를 다룬다는 교집합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동질감과 정서로 이어지며 이들을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엮었다.

전통 음악계에서 박다울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전통 음악의 새로운 세대였다. 기존 음악계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 온 이전 세대의 파격과 실험을 또 한 번 뒤집은 첨단의 세대 격이다. 거문고로만 놓고 보면, 전통 위에 현재적 감성을 입힌 ‘창작곡’을 만들어온 정대석(74), 루프 스테이션을 결합한 ‘거문고 명인’ 허윤정(56), 활 주법을 창시한 박우재를 잇는 4세대 격의 음악가다. 박우재는 박다울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뚜렷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박다울 박우재 [서울문화재단 제공]

박다울이 박우재의 존재를 알게 된 건 10년 전. 대학 시절이었던 2014년 박우재의 ‘거문고 더하기-이상변이’ 공연을 만난 뒤 박우재라는 연주자가 궁금했고, 언젠가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공연은 박우재라는 거문고 연주자의 특색을 잘 드러낸 공연이었다. 술대가 아닌 활로 거문고를 연주하고, 괘를 제거한 뒤 하모닉스로 연주하는 실험적 음악을 통해 거문고의 정형성을 깨부숴 온 행보의 연속선에 있었다.

“거문고는 점을 표현하기에 특화된 악기라 박자를 쪼개거나 모스 부호 같은 연주를 하기에 용이한데, (박우재는) 점을 나열하면서 그 위에 선을 얹어 연주하는 것이 참 멋지더라고요. 졸업 이후 저의 계획에 대해 불분명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음악을 해도 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미래의 실물을 보니 확신이 좀 생기더라고요.” (박다울)

2세대 허윤정을 보고 자신의 미래를 꿈꾼 박우재와 그를 보고 또 다른 꿈을 그려본 박다울. 두 사람은 반드시 마주할 수밖에 없던 필연적 만남이었다.

공연은 총 세 파트로 구성된다. 두 사람이 각각 자신의 곡을 연주하고 기존에 창작해둔 각자의 곡들 중 총 6곡을 선정, 함께 편곡한 버전을 연주한다. 이들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지금의 모습을 마주하는 공연이다. 함께 하는 곡을 선정한 것은 박다울이다. 박우재는 “이 곡들의 구성이 너무나 아름답고 설득력이 있었다”며 감탄했다.

박다울 박우재 [서울문화재단 제공]

박다울은 이번 공연을 ‘각자의 곡’이지만, ‘하나의 작품’처럼 구성했다. 그는 “아이디어가 비슷하면서도 괜찮은 곡들이 많았다”며 “같은 거문고 연주자이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는데, 그게 곡 안에서 보였다”고 말했다.

매주 한 번, 세 시간씩 연습하며 마주하는 시간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같고 다름을 마주했다. “남들과 다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은 이들을 탐험가로 만들었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곳은 조금 달랐다. 박우재가 이 공연을 “자신의 세계를 향해 떠나가는 두 아티스트의 이야기”라고 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한 곳에서 출발했지만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귀띔이다.

공연의 제목인 ‘검고막다른’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검은 악기’라는 의미에서 ‘검고’로 불렸던 거문고의 ‘어둠의 이미지’, 각자가 가지고 있었거나 새로이 펼쳐질 세계의 ‘막’이자 부사 ‘마구’의 준말로의 ‘막’, 두 사람이 ‘다다를’ 지향점이거나 기존의 것과의 ‘다름’,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막막함의 상징성이 제목 안에 담겼다.

연출도 겸하고 있는 박우재는 “여러 의미를 집어넣어 만든 단어이자 박다울·박우재를 잘 설명하는 말”이라고 했다. 궁극적으로 두 사람이 향하는 곳엔 ‘새로움’이 있다. 박우재는 “끊임없이 새롭고자 했던 그 움직임은 멈춰있는 것인 지, 속도감 있게 가고 있는 것인 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 새로운 전통으로의 전환, 새로운 전통으로의 실험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다울 박우재 [서울문화재단 제공]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거문고

두 사람의 음악적 토양을 다진 것은 ‘청개구리 기질’이었다. 박다울에겐 언제나 물음표가 따라 다녔다.

“거문고를 전공하면서 항상 들었던 의문은 하지 말라는 게 너무나 많다는 거였어요. 음악엔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거문고는 정답이 정해져 있더라고요. 하지만 누구도 그 정답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어요.” (박다울)

그 불편함에 대한 답을 하듯 앞서간 선배의 걸음은 박다울이라는 ‘뉴 제너레이션’의 도화선이 됐다. 전통 음악 안에서 창작이 ‘문제아의 일탈’이자 ‘돌발 행동’으로 여겨지던 시절 박우재는 일찌감치 낯선 길로 떠났다. 2002년 거문고 연주로 대통령상을 받으며 정점에 올랐지만, 그가 선택한 곳은 완전히 미지의 세계였다. ‘새로운 전통’을 향한 열망으로 창작과 실험의 길로 나아간 것이다.

박다울은 “이전 세대부터 지금까지 거문고는 이미 파고 파서 너무나 깊이 파놓은 상태”라며 “어찌 보면 이제 거문고는 가성비가 안 좋은 사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거문고는 무척이나 다른 악기다. 박우재에게 거문고는 “예쁘지만 친해지기 어려운 악기”였고, 이제는 그 스스로와 동일시하는 악기가 됐다. 취미로 거문고를 시작했던 소년 시절을 지나오자 박다울에게 거문고는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됐다. 그는 “소리 하나 내는 것도 재밌었던 악기가 ‘생존’의 도구가 되자, 멀어져 가는 것들이 있다”며 “거문고와 평생 함께하게 될 것 같기에 재미있게 같이 있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고 했다.

박다울 박우재 [서울문화재단 제공]

거문고라는 악기가 독특한 것은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MBTI로 치면 ‘내향형’이 확실하다. 박우재는 “거문고는 한계가 많은 악기”라며 “다른 악기보다 레퍼토리도 적고, 함께 할 때보다 혼자 연주할 때 더 좋은 악기”라고 했다. 박다울 역시 “어울리는 데에 유리한 악기가 아니어서 주도적으로 어울릴 수 있도록 뭔가를 찾아야 하는 악기”라며 “그래서인지 거문고는 유독 다른 악기 전공자보다 창작자가 많다”고 했다. 거문고와 거문고의 만남이 이색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다울은 “어떤 사람, 어떤 연주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거문고끼리의 만남은 시너지가 다를 것”이라고 했다.

같은 악기를 다루지만 두 사람의 음악은 다른 곳을 향해있다. 박다울은 “우리 둘은 음악적으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포인트가 다른 음악가들”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느끼는 서로의 차이는 표현방식은 달랐지만 닮아있다. 박우재는 “박다울은 리드미컬하고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샘솟아 반짝반짝한 음악가”인 반면 자신은 “이전에 발견한 반짝임을 우아하고 보존가치 있게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박다울이 본 박우재는 “긴 실타래를 자기 안에서 뽑아내며 수려한 선율로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음악가”다.

70분의 긴 호흡으로 이어질 두 사람의 공연은 뭐든지 빠르게 소비하고 소화하는 ‘숏폼’ 시대엔 진입장벽이 높다. 박다울의 ‘슈퍼밴드’ 등장은 낯선 악기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줬고,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과 대중의 접점을 만들었다. 미디어의 힘은 컸지만,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렇듯 당시의 인기가 새로운 장르의 저변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꾸준하고 끈질기다. 어느 정도의 결핍은 창작의 동력이 됐다. 박다울은 “가능성은 낮을 지라도 파고 파다 보면 더 좋은 것들이 나올 수 있다”며 “깊고 넓게 파다 보면 우스갯소리로 지구정복도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한다”며 웃었다.

“끊임없이 새롭고 싶어하는 두 사람이다 보니 동지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행복해요. 지금의 날들은 저마다의 우주를 찾아 떠난 두 사람이 서로를 보고 자신의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외롭지 않음을 학인하는 시간이 되고 있어요.” (박우재)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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