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손실 늘어나는 티빙도 걱정거리
“제작 시스템 개선…OTT 콘텐츠 강화해야”
윤상현 CJ ENM 대표. [CJ ENM 제공] |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녹록지 않다. 고난의 행군의 연속이다. CJ ENM의 현재 모습이다.
CJ ENM의 실적이 심상치 않다. CJ ENM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이 146억 원을 기록하면서 적자전환했다. 지난해 매출액도 4조3684억 원으로 전년 대비 8.8% 하락했다.
이 와중에 CJ ENM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이끌던 구창근 대표는 이달 초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대표직을 맡은 지 1년 만이다. 공식 사임 배경은 개인적인 사유라고 하지만 사실상 실적 부진에 따른 책임 사퇴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곧장 윤상현 CJ ENM 커머스 부문 대표가 구 전 대표의 바톤을 이어받았다. 윤 대표가 커머스와 엔터테인먼트 부문 대표직을 겸직하는 것이다.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 윤 대표에게 놓인 과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CJ ENM은 영화계의 맏형으로 통한다. 그만큼 한국 영화계에서 쌓은 성과가 많았다. 그러나 영화 ‘기생충’ 이후 한국 관객들을 사실상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인 2022년부터 CJ ENM이 제작하거나 투자·배급한 영화 13편을 살펴보면,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작품은 ‘헤어질 결심’, ‘공조 2: 인터내셔날’ 등 2편에 불과하다.
더 뼈아픈 대목은 막대한 투자금이 투입됐던 텐트폴 영화들이 가장 큰 손해를 안겼다는 것이다. 지난해 무려 286억 원이 투입된 ‘더 문’은 50만 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이는 손익분기점인 600만 명에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총 700억 원이 투입된 ‘외계+인’ 1부(2022년)와 ‘외계+인’ 2부(2023년) 역시 두 편을 합쳐 1500만 명을 동원해야 하지만 300만 명 채 모으지 못했다.
영화 명가로 소문난 CJ ENM이 연달아 영화 사업에서 쓴맛을 맛보면서 지난해엔 CJ ENM이 아예 영화 사업을 철수할 것이란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이에 구 전 대표가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사실이 아니다"며 직접 해명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사업이 최근 CJ ENM에게 큰 부담인 것은 사실이다.
영화·드라마 부문 매출은 지난해 기준 1조92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3.3% 대폭 줄었다. 이는 미디어 플랫폼, 영화·드라마, 음악, 커머스 등 총 4개 부문 가운데 가장 큰 감소폭이다. 영화·드라마 부문의 영업손실은 975억 원을 기록했다.
미디어플랫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tvN, TVING, tvN D 등 미디어플랫폼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2620억 원으로 같은 기간 11.6% 줄었다.
CJ ENM의 전체 매출에서 미디어플랫폼(28.9%)과 영화·드라마 부문(25%)이 차지하는 비율이 모두 합쳐 절반을 넘는 것을 감안하면 CJ ENM에겐 큰 고민거리일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CJ ENM이 현재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전반적인 제작 시스템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과정을 체계화하고 집대성했지만, 이러한 획일적인 시스템이 지나치게 흥행 공식을 통한 안전성만 추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베테랑 2’ 출연진과 류승완 감독. [CJ ENM 제공] |
실제로 CJ ENM은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코로나 팬데믹 당시 박찬욱 감독, 김용화 감독, 강제규 감독 등 스타 감독들의 제작사들을 인수했다. 올해도 영화 ‘내부자들’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의 신작 ‘하얼빈’과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2’ 등 흥행 감독들의 신작에 주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대중적으로 흥행할 수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하다 보니 흥행 코드를 조합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는 역동성이나 실험성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며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 되는 상황이 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디어 플랫폼 사업에 대해서도 “급변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자체적인 제작·유통망에 국한되지 말고 CJ ENM 자체가 플랫폼이 되는 방식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영섭 대중문화 평론가도 “지금까진 안전성을 위해 스타 감독에 의지했지만 이제는 개성 있는 신인 감독들과 야심찬 시도나 실험을 도전할 필요가 있다”며 “스타 감독들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초심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CJ ENM이 야심차게 뛰어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CJ ENM은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지난 2020년 토종 OTT 티빙(TVING)의 독립 법인을 출범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티빙의 손실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 티빙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전년 대비 19.2% 늘어난 1420억 원으로 집계됐다.
실적 뿐 아니라 콘텐츠와 서비스 면에서도 다른 OTT에 밀리고 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지난 2월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티빙의 사용자 점유율은 17.4%(551만 명)로 넷플릭스(39%)와 쿠팡플레이(25.4%)에 이어 3위에 그쳤다.
사용자 시간 점유율에선 티빙이 20%(3248만 시간)으로 54.3%(8809만시간)를 차지한 넷플릭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쿠팡플레이는 12.5%(2021만 시간)로 그 뒤를 이었다.
티빙은 사실상 OTT 업계에서 압도적인 1위인 넷플릭스를 제쳐두고 쿠팡플레이와 2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모양새다.
이를 의식한 듯 티빙은 각종 콘텐츠 라인업을 강화하는 동시에 일반 요금제보다 4000원 저렴한 광고 요금제를 도입하는 등 각종 대책으로 신규 이용자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
[티빙 제공] |
스포츠 중계에도 나섰다. 스포츠 중계로 점유율을 끌어올린 쿠팡플레이를 벤치마킹해 올해 KBO(한국 야구) 리그의 독점 중계에도 나선 것. 티빙은 올해부터 2026년까지 KBO 리그 뉴미디어 중계권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KBO 리그 중계 덕분에 티빙의 DAU(일일 활성 사용자 수)는 올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지난달 31일엔 최고 DAU인 206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DAU의 성장과 달리 잇따른 허술한 중계로 티빙은 뭇매를 맞았다. 첫 시범 경기에서 야구 용어 ‘세이프(safe)’를 ‘세이브’로, 선수 등 번호를 타순으로 착각해 표기할 뿐만 아니라 경기 도중 송출이 중단되는 최악의 사고까지 낸 것.
서비스 품질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다음 달부터 중계가 유료화되는 것도 일각에선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다음 달부터 티빙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보기 위해서는 월 55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업계에선 스포츠 콘텐츠로 이용자 유입이 늘 것이란 관측과 부실한 서비스로 신규 이용자를 잡지 못할 경우 적자 폭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서비스를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용현 KB증권 연구원은 “티빙은 코어 야구 팬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빠르게 고도화 해 이탈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웨이브와의 합병도 또 다른 난제다. CJ ENM은 OTT 업계에서 안정적으로 2위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웨이브와의 합병에 나섰다. 그러나 합병 작업은 지난 12월 이후 지지부진하다. 지분 인수 비용 등을 비롯한 이해관계 맞물리면서 논의가 길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연내 합병이 성사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주희 티빙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주주가 다양하고 많아 양측이 합의를 이뤄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사실상 합병 과정의 어려움을 털어놓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OTT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스포츠 중계나 합병 외에 무엇보다 콘텐츠의 힘이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컨슈머인사이트가 최근 20~59세 OTT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올해 1분기 OTT의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를 시청한 경험을 조사한 결과, 10위권에 포진한 티빙의 작품은 ‘피라미드 게임’과 ‘LTNS’ 등 두 작품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의 작품이었다.
최근 들어 그나마 CJ ENM에게 위안이 되는 작품은 시청률이 고공행진 중인 ‘눈물의 여왕’과 예능 프로그램 ‘환승연애 3’ 등이다.
김 평론가는 “OTT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CJ ENM의 독점적 아성이 깨지고 옛날처럼 영향력을 발휘하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익숙하지만 색다른 혼합 장르의 콘텐츠로 경쟁력을 계속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평론가는 “티빙은 아직 새로운 시리즈물을 기대하게 하기 보단 재방을 빨리 볼 수 있는 개념에 더 가깝다”며 “요즘엔 좋은 콘텐츠가 나오면 입소문이 나기 마련인데, 왜 그런 킬러 콘텐츠가 많지 않은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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