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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 올림픽’ 황금사자상, 남반구 원주민 싹쓸이 [베니스 비엔날레 2024]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에 호주 원주민 출신·마오리족 여성 작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호주관 전경. [베니스=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이탈리아 베니스)=이정아 기자] ‘미술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남반구 원주민 둘이 나란히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막한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황금사자상의 영예는 호주 원주민 출신의 작가 아치 무어(54)가 대표한 호주관에게 돌아갔다. 본전시에 참여한 작가를 대상으로 수상하는 최고 작가상인 황금사자상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로 구성된 ‘마타호 컬렉티브’가 받았다.

첫 남미 출신 예술감독이 본전시를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작품으로 채웠을 때부터, ‘탈(脫)백인’은 시작됐다. 수상자 명단에 이변은 없었다는 의미다. 글로벌 사우스는 서구 선진국과 식민 지배국 중심의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서구 주류 서사에서 배제된 이방인의 존재가 전면에 드러나는 전시로 구성됐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호주관 전경. [베니스=이정아 기자]

무어는 자신의 가족사이자 저평가된 원주민의 역사를 4년 넘게 거꾸로 추적해 가계도를 만들었다. 작가는 검은 칠판으로 된 호주관의 벽과 천장에 흰색 분필로 그 가계도를 직접 빼곡히 새겼다. 2400세대에 걸친 3484명의 이름이 적혔고, 무려 6만5000년의 역사가 기록됐다. 가계도에는 공백으로 남겨둔 부분도 있었는데 살해되거나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공개 기록에서 지워진 사람들을 말한다. 작가가 발굴한 국가기록물 더미도 전시관 중앙에 쌓였다. 이 자료에는 원주민의 죽음에 대한 호주 정부의 검시관 조사가 담긴 보고서도 있었다.

호주관은 “‘폐색감(閉塞感)’이 기저에 있는 과거에 대해서 미학적으로 ‘매우 강력한’ 설치물을 보여줬다. 수천 명의 이름들을 통해 이를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희미하게 제공했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이날 공식 개막식에서 진행된 시상에서 무어는 “우리는 모두 하나”라고 말했다.

호주관을 대표한 호주 원주민 출신의 작가 아치 무어(54).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최고의 참가자를 위한 황금사자상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4명으로 구성된 마타호 컬렉티브에게 돌아갔다. 마타호 컬렉티브는 아르세날레 전시장 입구에 형광빛이 감도는 격자무늬의 대형 섬유 설치작품인 ‘타카파우(Takapau)’를 선보였다. 타카파우는 마오리족 여성이 출산을 할 때 사용하는 짜임새 있는 전통 매트로 모계로 이어지는 노동 집약적인 여성의 삶을 다각적으로 대변한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세날레 입구 천장 전경. [베니스=이정아 기자]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로 구성된 ‘마타호 컬렉티브’. [베니스 비엔날레]

이날 마타호 컬렉티브는 본전시를 진두지휘한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총감독에게 “원주민과 퀴어의 목소리를 높인 것에 대해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올해 본전시는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삶을 강탈당한 원주민, 살던 땅을 떠나 타향을 떠도는 이민자와 망명자, 주류 서사에서 배제돼 기록조차 되지 않은 퀴어와 여성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전시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Foreigners Everywhere)’며, 88개국 331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한국 수상은 불발됐다. 올해 한국관에는 구정아(57)가 참여했다. 본전시에는 총 4명의 한국 작가가 이름을 올렸으며, 이 가운데 생존 작가는 김윤신(89)과 이강승(46)이다.

한편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날 공식 개막했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이어진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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