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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생망’인 줄 알았는데 ‘나’라는 희망이 있었다
‘멋진 어른’되기 위해 최선 다한 청춘들
남은 건 빚·떠난 친구 빈자리·번아웃뿐
‘진정한 변화는 나로부터’ 묵직한 울림 전해

“대학에 가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군대에 다녀오면, 어엿한 직장인이 되면, (중략) 그땐 진짜 어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거쳐온 지금, 나오는 자신이 진짜 어른인지 알 수 없었다.”(이희영 작가 신간 ‘셰이커’ 중)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좀 멋지고 폼 나는 어른이 되고 싶어 뭐든 최선을 다했는데.... 남은 건 학자금 대출과 잃어버린 친구, 번아웃(극심한 정신적·육체적 피로로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버린 상태)으로 너덜너덜해진 나 자신 뿐이다.

소설 속 청춘들도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조경란 작가의 중편 ‘움직임’(2024년 개정판)의 이경은 유일한 혈육인 엄마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겨진 것이 싫어 왕래도 없던 외가에서 무관심 속에 시간을 견뎌낸다.

김호연 작가의 신간 ‘나의 돈키호테’의 솔은 아무리 애를 써도 인정받지 못하는 회사에서 번아웃된 후 스스로 인생 1막을 접고 대전 엄마집으로 짐을 싸서 내려온다.

어른이 뭔지 친구들과 ‘농반진반(半眞半僞)’으로 이야기하던 ‘셰이커’에 나오는 나우는 절친한 친구 이내를 먼저 떠나보낸 상실의 아픔과 함께 그 친구의 여자친구 하제와 사귀는 ‘배신자’로 친구들의 비난을 받는다. 서른 둘이 된 나우는 이미 어른이 됐어야 했지만 아직도 이내의 사고가 있었던 19세에 머물러 있다.

청춘들의 괴로운 삶은 사실 개개인의 잘못이나 실수보다 사회적 빈곤, 과도한 경쟁구도 혹은 운명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해결의 시작은 의외이면서도 상당히 명확하다. 바로 ‘나 자신’이다. 고(故) 김미현 평론가는 1998년 ‘움직임’을 해설하면서 “진정한 변화는 결국 ‘나’로부터 비롯돼야 한다는 발견이 소외된 자들을 챙기는 작가의 세심한 헤아림과 맞물려 있다”고 평한 바 있다. 구조적 문제가 있다 해도 인간의 자유 의지가 있다면 해결할 수 있다는, 서양철학의 양립가능론과 맞닿아 있다.

소설 속 청춘들도 비록 당장은 지치고 힘들지만 엎어진 곳에서 스스로 훌훌 털고 일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쓴다.

솔은 유튜버로서 ‘인생 2막’을 열고, 콘텐츠 주제로 유년시절 행복했던 기억을 선사했던 ‘돈키호테 아저씨’ 장영수 찾기를 시작한다. 우연히 만난 고양이 덕에 요즘 유행(?)하는 타임슬립(시간 이동) 방식으로 이내의 사고가 있었던 19세, 하제를 처음 만났던 15세 그 시절로 돌아가 고군분투한다.

다만 26년 전 소설 속 이경만이 기차역을 기웃거리만 할 뿐, 아직 이모가 떠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래서 삼촌밖에 남지 않은 그곳에서 전처럼 밥을 차리고 꽃밭을 키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조 작가가 올해 이 소설의 개정판을 내면서 한 문장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서랍에서 검정고시 학습지를 꺼내 읽다 보면 또 시간이 갔다.” 이모가 주고 간 고교검정고시 문제집 두 권.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해 철 지난 옷을 넣어두는 옷장 가장 아래 서랍에 넣어둔 그 문제집이 개정판에서 재등장한 것이다.

과연 ‘찐산초(대한민국의 산초라는 뜻)’ 솔이는 사회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돈키호테 아저씨를 다시 만나 마음의 위안을 얻었을까. 5번이나 타임슬립을 하며 과거의 일을 바로잡으려 했던 나우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했을까. 옷장에서 검정고시 학습지를 꺼내든 이경은 고졸자격증을 따고 당당하게 역사로 가 기차를 탔을까.

신소연 기자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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