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부엌]
술에 절어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원이 훌쩍 넘는 식대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요리와 재료에 담긴 썰도 한 술 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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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몇달 전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일본에서 현지화된 잡채 근황jpg’라는 글이 게시판을 달궜습니다. 잡채에 끼얹은 크림소스 그 위에 노른자까지. 고소한 잡채가 ‘카루보나라 챠푸체(까르보나라 잡채)’라는 퓨전 메인 디쉬로 팔리고 있었습니다. 잡채의 일탈에 누리꾼들이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이탈리아네 심정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반응과 함께 “먹어보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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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 있는 한식당에서 까르보나라 잡채를 팔고 있다. [틱톡 캡처] |
사실 일본에서는 까르보나라 잡채뿐 아니라 현지화된 잡채 메뉴가 여럿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일본의 제빵회사 후지 빵이 샌드 안에 잡채를 넣은 잡채 샌드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근본을 상실한 퓨전 잡채 요리에 어이가 없다가도 잡채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새 납득이 갑니다. 본디 잡채는 변주에 변주를 더해 만들어진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퇴근 후 부엌에서는 혼종의 요리, 잡채의 역사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또 원팬으로 만드는 잡채와 인스턴트 라면으로 간단하게 만드는 식단용 잡채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음식 썰]‘섞일 잡, 나물 채’. 잡채를 한자로 풀어보면 모듬 나물무침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원래 잡채에는 당면과 고기가 들어있지 않았고, 나물만 있었습니다. 잡채의 기원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광해군의 ‘최애 음식’이 바로 잡채였다고 하죠. 어느 정도로 잡채를 좋아했냐면 요리를 개발한 신하에게 장관급 벼슬까지 내릴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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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야사에 따르면 각종 산해진미에 질려 있던 광해군이 어느 날 “먹을만한 음식이 없느냐”고 묻자 이충이라는 사람이 잡채를 만들어 올렸다고 합니다. 잡채의 맛에 반한 광해군은 그에게 호조판서 벼슬을 내렸습니다. 호조판서는 오늘날로 따지면 기획재정부 장관입니다. 잡채 한 그릇으로 장관까지 오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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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요리왕 비룡’ 캡처] |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를 보면 ‘이충은 채소에 다른 맛을 가미했는데 그 맛이 희한하였다’라고 적혀있습니다. 또 '이충은 진기한 음식을 만들어 사사로이 궁중에도 바치곤 했는데, 임금은 식사 때마다 이충의 집에서 만들어오는 음식을 기다렸다가 수저를 들고는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묘사된 음식이 바로 잡채입니다. 하지만 요리 솜씨로 간신배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자 백성들의 원망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광해군일기 11년 3월 5일자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더덕 정승의 권세가 중하더니,
이제는 잡채 판서의 세력 당할 자 없구나
沙參閣老權初重, 雜菜尙書勢莫當 (사삼각로권초중, 잡채상서세막당)
더덕 정승과 잡채 판서 이야기는 당시 민간에 떠돌던 노래로 실록에까지 실린 것입니다. 광해군 시절에 한효순이란 사람은 좌의정까지 올랐는데, 세간에서는 그가 임금에게 더덕을 넣은 강정을 바쳐서 정승 자리를 얻었다고 수군댔습니다. 또 이충에 대해 백성들은 그를 ‘잡채 판서’라 부르며 조롱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때의 잡채 레시피를 보면 당면도 들어가지 않고 고기도 빠져있습니다. 도라지, 오이, 숙주, 무 등 각종 나물을 익혀서 무친 것 정도로 나와있죠. 영조 때의 문장가였던 서명응이 쓴 ‘보만재총서’라는 책에도 잡채 만드는 법이 상세히 나와 있는데 광해군 때의 레시피와 유사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잡채에 당면과 채 썬 고기가 들어갔을까요? 1876년 고종 때 김기수가 집필한 ‘일동기유(日東記遊)’에 드디어 고기 넣은 잡채가 등장합니다. 저서에 따르면 잡채는 고기와 채소를 가늘게 썰고 콩을 섞어 버무린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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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린 당면 [게티이미지뱅크] |
당면을 넣어 먹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인 듯합니다. 당면은 원래 화교들이 집에서 만들어 팔던 것인데 1919년 황해도 사리원에 세워진 대형 당면공장 덕에 생산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때부터 만두와 순대 등 여러 요리에 당면을 넣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1924년 요리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온 잡채 요리법에서 드디어 당면이 등장합니다. 그 책에 따르면 잡채는 도라지, 미나리, 표고버섯, 석이버섯 등 각종 채소와 소고기, 돼지고기를 넣고 만드는데 여기에다 불린 해삼과 전복을 가늘게 썰어 넣으면 좋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당면에 대해서는 ‘잡채에 당면을 넣으면 좋지 않다’고 설명하죠. 달리 보면 이 시기 잡채에 당면이 들어갔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잡채는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던 나물요리와 중국에서 건너온 당면이 한데 뒤섞여 오늘날의 모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오늘날 잡채는 식당 밑반찬으로 나오는 ‘조연급’ 요리이지만 막상 만들려면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음식입니다. 또 노하우가 없으면 간이 잘 베지 않거나 당면이 퉁퉁 붇기 일쑤죠. 기껏 힘들게 만들었는데 금방 상해버립니다. 그런데 원칙만 잘 지키면 파스타만큼 간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상에서는 ‘끓인 당면을 찬물에 행궈야한다’,‘양념을 볶지 말고 버무려야 한다’ 등의 얘기가 있습니다.
또 고구마 당면 대신 칼로리가 낮은 녹두 당면을 활용한 잡채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에 불리지 않고 20분 만에 만드는 잡채 레시피 소개합니다.
▶재료: 당면 125g, 돼지고기 안심 100g(잡채용), 양파 반개, 당근 1/3조각, 버섯 6개, 부추 한 줌, 진간장 4큰술, 소금 1t, 굴소스 1큰술, 후추, 알룰로스 또는 물엿 1큰술, 참기름
1. 끓는 물에 식용유 1큰술을 넣고 생당면을 8분간 끓입니다.
2. 당면이 끓을 동안 고기에 간장 1큰술을 넣고 재워둡니다. 잡채에 들어가 채소를 썰어둡니다.
3. 진간장 4큰술, 소금 1t, 후추, 굴소스, 알룰로스를 넣고 잡채 양념을 만듭니다.
4. 돼지고기를 먼저 볶습니다. 부추를 제외한 나머지 채소를 넣고 센 불에 볶습니다.
5. 삶은 당면을 넣고 물 약간과 양념을 넣고 볶습니다. 부추의 숨이 죽을 때까지 볶습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한 바퀴 둘러주면 완성입니다.
사실 탱글한 잡채를 오래도록 먹기 위해서는 보관도 중요합니다. 뜨거운 팬에 그대로 두지 말고 차가운 유리 그릇에 바로 옮겨 담아 한 김 식혀주는 것이 좋습니다. 자취생들은 잡채를 소분해 냉동실에 바로 얼리면 간편식처럼 잡채를 즐길 수 있습니다.
칼로리가 낮은 잡채 레시피도 어렵지 않습니다. 양념은 동일하지만 고구마 당면 대신 '녹두 당면'을 사용하면 됩니다. 시중에서는 인스턴트 컵라면으로도 판매하고 있는데요. 재료는 그대로 볶고 물 한 컵과 면을 넣으면 1인분 식단용 잡채가 완성됩니다.
간혹 양념에 간마늘을 넣기도 하는데 이 간마늘은 잡채를 금방 상하게 하는 주범입니다. 마늘은 넣지 않아도 맛에 큰 차이가 없으니 되도록 빼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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