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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상 졌다고?” 105 페이지 ‘기후 소송’ 판결문 숨은 뜻은… [지구, 뭐래?]
지난 4월 23일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비롯한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부실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낸 기후소송 첫 헌법재판 공개변론에 앞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후미디어허브 제공]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이 소송은 사실 패소한 것과 다름없다고 합니다”

기후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청소년기후행동의 활동가 김보림 씨는 1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의 판결의 의미와 기후 운동의 과제’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미흡해 기본권을 침해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시민들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 승소였죠.

2023년 3월 13일 오전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소년기후행동이 기후 위기 헌법소원 청구 3년을 맞이해 헌재의 기본권 침해 판결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김보림 활동가는 2020년 3월 가장 먼저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19명의 청구인 중 한명이었습니다. 승소 판결을 받기까지 무려 4년 반 가까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판결 당일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김보림 활동가가 이날 “누군가는 헌법소원 판결에 대한 날이 선 비판들을 남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우리에게 이 소송은 사실 패소한 것과 다름없고 판결문을 짜내어 그 쓸모라도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승리로 기억됐던 기후 헌법소원이 실은, 3가지 심판 대상 중 1가지에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일부 승소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김보림 활동가는 “헌법소원의 판결 이후, 어정쩡한 기분, 완전 위헌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도 말했습니다.

도대체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렸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2023년 7월 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김영희 변호사 [정치하는엄마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게 인간의 활동, 구체적으로는 온실가스의 영향이라는 데에 국제 사회는 합의를 했습니다. 이에 각 국가 별로 목표를 세워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했지요. 이걸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국가온실가스목표는 법률과 시행령, 계획 등에 나뉘어 설정돼 있습니다. ①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서는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5% 이상의 범위로 정하되, 그 비율을 시행령을 통해 정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②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에서는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40%를 줄이기로 했고, ③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에서는 해마다 온실가스를 얼만큼 줄일지, 즉 감축 경로를 정해뒀습니다.

[플랜 1.5]

이 세 가지가 모두 심판 대상이었는데, 헌법재판소는 이중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항에 대해서만 전원 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2050년에 탄소중립을 하기로 했는데, 2030년까지의 목표만 설정하고 2031~2049년 감축 목표를 정량적으로 제시하지 않아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반면 40%의 감축 목표를 제시한 시행령을 두고는 전원 일치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 등을 고려해서 국회 또는 이를 위임 받은 정부가 정한 감축 목표 비율이 우리나라의 책임에 걸맞는지,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지 단정해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을 두고서는 5대 4로 의견이 갈렸습니다. (관련 기사: 아시아 최초 기후 소송 ‘5대4’ 박빙 대결 펼쳐진 까닭 [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

정리하면, 헌법재판소는 정량적인 온실가스감축목표를 세우지 않은 기간에 한해서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을 뿐, 2030년까지 연도별 온실가스감축목표가 타당한 지는 판단을 유보했다는 이야깁니다.

1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의 판결의 의미와 기후 운동의 과제’ 토론회. 주소현 기자

이같은 결정이 나온 지 약 50여 일이 지나고 다시 모인 청구인들은 “무엇이 위헌이고, 무엇이 위헌이 아니었는지 이분법적 접근에서 이제 벗어나자”고 말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준 100여 쪽의 판결문에는 그 이상의 함의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먼저 그동안 도외시됐던 ‘환경권’을 쟁취했습니다. 그동안 환경권의 침해를 인정받은 선례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청구인을 대리했던 윤세종 변호사는 “기후변화의 원인과 책임, 기후변화가 임계점에 다다랐고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이 인정됐다”며 “향후 입법이나 비슷한 소송에서 이에 대해 애써 입증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헌법불합치를 받은 만큼 이를 대체할 법을 국회는 2026년 2월까지 마련해야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을 통해 기후변화라는 위험 상황에서 정부가 져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 제시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의 구체적인 목표치가 전 지구적인 감축 노력의 관점에서 ①우리나라가 기여해야 할 몫에 부합하는지, 감축 목표 설정의 체계가 기후변화의 영향과 온실가스 배출 제한의 측면에서 ②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않는 방식으로, 또한 온실가스 감축이 ③실효적으로 담보될 수 있는 방식으로 제도화돼 있는지 등을 ④과학적 사실과 ⑤국제 기준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청구인들과 소송을 대리했던 변호사들은 앞으로도 국회와 정부를 대상으로 한 후속 입법 노력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와 함께 시민 참여와 연대를 바탕으로 기후 대응을 위한 사회적 동력도 키워가겠다고 합니다.

시민기후소송의 청구인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중요한 것은 온실가스 수치만이 아니라, 기후 헌법소원을 통해 지키고자 했던 기본권”이라며 “헌법소원의 판결은 ‘최저선’일 뿐, 남은 일은 기후대응의 ‘최선’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기기후소송과 탄소중립기본계획 위헌소송을 주도한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사무국장은 “4개의 소송의 청구인들이 공동으로 전문가를 초빙해 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국회 및 정부와 협상하는 등 시민과 소통하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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