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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락자들 모아 워크숍…세상 어디에도 없는 콩쿠르” [인터뷰] [KNSO국제지휘콩쿠르]
다비트 라일란트 국립심포니 예술감독
두 번째 콩쿠르 준비부터 심사까지 진행
본선 탈락자들 영상 피드백ㆍ음악 조언
“지휘자에 필요한 자질은 사람에 대한 존중”

2023 KNSO 작곡가 아틀리에 중 다비트 라일란트 예술감독 (오른쪽)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20년쯤 전이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프랑스 메츠국립오케스트라, 로잔심포니에타를 이끄는 다비트 라일란트(45) 감독이 20대이던 그 때, 배움에 대한 갈증이 컸다고 한다. 그는 “음악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해 늘 외롭고 고독했던 날들”이라고 돌아봤다. 그 시절 만난 오스트리아 출신 지휘자, ‘바로크 음악의 교황’으로 불리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29~2016)는 라일란트 감독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너무나 조언이 필요해 아르농쿠스 선생님께 5분만 시간을 내주십사 부탁을 드렸어요. 선생님은 2시간을 기꺼이 내주셨죠. 그 경험은 제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고, 그날 이후 삶의 본보기로 남아있어요.”

‘미래 세대’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발굴은 라일란트 감독의 음악 인생을 관통하는 중요한 과업이다. 최근 헤럴드경제와 만난 그는 “감히 스승님과 저를 비교할 순 없지만,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젊은 음악가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미래 세대와 이전 세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예술적 성취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과제는 바로 ‘미래 세대의 발굴’이다. 그간 악단이 주력해온 작곡가, 지휘자 발굴 프로젝트는 2022년 취임한 라일란트 감독의 음악관과 만나 시너지를 내고 있다. 그 결정체는 지난 10일 세 명의 차세대 지휘자를 발굴, 올해로 2회를 맞는 KNSO국제지휘콩쿠르다.

콩쿠르 기간 내내 라일란트 감독은 쉴 틈이 없었다. 심사위원장으로 본선에 진출한 12명의 차세대 지휘자들의 자질을 판단해야 했다. 결선에 가까워졌을 때 그의 관심은 ‘주인공’들에게만 향하진 않았다. 이번 콩쿠르 기간 중 그가 가장 먼저 돌본 이들은 매 단계 ‘탈락의 고배’를 마신 참가자들. 그는 1차 본선에서 떨어진 참가자 6명과 워크숍을 진행, 콩쿠르 영상을 보며 피드백을 해줬다. 전 세계 어느 지휘 콩쿠르에서도 없는 일이다.

라일란트 감독은 “탈락자들과 비디오를 보며 음악적인 것은 물론 음악 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이 워크숍의 첫 목표는 공감이었다”고 했다.

제2회 KNSO국제지휘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맡은 다비트 라일란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이번 KNSO국제지휘콩쿠르엔 전 세계 44개국에서 모인 224명이 지원했고, 그 중 12명만이 본선을 진출했다. 1차 본선에서 절반이 가려졌고, 2차 본선에서 다시 절반을 추려 최종 3인이 결정됐다.

“이 콩쿠르를 위해 수천 킬로를 날아온 친구도 있어요.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기대도 컸을텐데 최종 목적지 바로 앞에서 떨어진 거잖아요. 이 곳에 걸었던 희망만큼 이뤄지지 않았을 때의 좌절감도 크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이 이들에게 가장 대화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라일란트 감독은 영상 피드백을 통해 콩쿠르에서 아쉬웠던 점과 좋았던 점, 지휘자이자 음악가로서 걸어가야 하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탈락한 참가자들과 3시간 넘게 소통했다. 그와 대화를 나눈 참가자들은 밤 12시가 넘어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매 라운드의 참여가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고, 이 대화가 엄청난 배움의 시간이었다”는 내용이었다.

3년에 한 번씩 개회, 올해로 2회를 맞은 콩쿠르는 라일란트 감독을 포함해 총 9명의 심사위원이 함께 했다. 콜린 메터스(영국 로열 아카데미 지휘자 과정 설립자), 커티스 스튜어트(작곡가, 전 그래미상 수상자), 미하엘 베커(뒤셀도르프 톤할레 대표이사) 등 각계 전문가 9명이 참여해 열띤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위원 선정 기준도 남다르다. ▷음악적 성취를 이뤄나가는 방식 ▷음악과 지휘를 지켜나가는 방식 ▷음악을 대하는 영리함 ▷ 음악적 청렴함 등이다. 이 네 가지 기준엔 라일란트 감독의 음악가로서 가치관이 녹아있다.

라일란트 감독이 특히 중요시하는 가치는 ‘청렴함’이다. 그는 “백지 위에 자신의 의견을 쏟아내는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외부의 영향을 받기가 쉽다”며 “나의 의견이 외부의 모든 것, 음악 외적인 요소와 거리를 두게끔 하는 것이 청렴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연, 지연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외부 요인을 뛰어넘어 올해 콩쿠르에선 독일 출신의 시몬 에델만이 1위를 차지했다.

제2회 KNSO국제지휘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맡은 다비트 라일란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지휘를 지켜나가는 방식’도 심사위원들이 갖춰야 할 자질이다. 그는 “지휘는 과학이자 학문이며 기술로도 볼 수 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샤먼의 힘’을 가진다”며 “몇 가지 제스처와 한두 마디로 80명의 음악가를 뭉치게 하는 것은 주술사와 같은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KNSO국제지휘콩쿠르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 세계 유수 콩쿠르의 구조를 함께 하면서도 ‘과감한 프로그램’으로 차별화했다.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특성을 살려 매회 한국 현대음악을 심사곡으로 넣었다. 한국 음악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1회 땐 김택수 작곡가, 올해는 박영희 작곡가의 곡을 선정했다.

라일란트 감독은 특히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은 뛰어난 실력에도 (남성들과) 동등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엔 어려움이 있다. 이는 여성 작곡가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며 “여성으로서 박영희 작곡가가 걸어온 길과 운명이 내가 추구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 작곡가의 아직 녹음된 적 없는 곡(‘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이 미지의 영역을 젊은 지휘자들이 어떻게 탐색해나갈지 궁금해 프로그램으로 선정했다”고 귀띔했다.

콩쿠르의 최고 성과는 지난해 2위를 차지한 윤한결(30)을 발견한 것이다. 음악계에선 그를 ‘국립심포니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이 콩쿠르가 발판이 돼 세계 무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고 있어서다.

윤한결은 이 콩쿠르를 계기로 세계적인 클래식 연주자 매니지먼트인 아스코나스 홀트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8월엔 한국인 최초로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받았다. 올해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자작곡 ‘그리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그는 뉴욕타임스가 꼽은 이 축제의 유망주로 꼽히기도 했다. 윤한결 역시 “이 콩쿠르를 통해 세계 무대로 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제2회 KNSO국제지휘콩쿠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라일란트 감독은 “윤한결 지휘자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 점은 무척 기쁘다”며 “하지만 예술가의 커리어에선 (성취가) 빨라지는 구간이 있는가 하면 때론 느려져 내면으로 파고드는 시기도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콩쿠르는 음악가의 커리어를 가속화시켜줄 순 있어도 그들의 커리어와 미래를 예측하거나 보장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콩쿠르는 하나의 순간에 대한 사진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수많은 미래 세대 지휘자를 만나온 라일란트 감독은 ‘지휘자의 자질’은 단 몇 가지로 설명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음악적 이해와 테크닉,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용성과 창의력 사이에 균형을 잡되, 음악을 창조적으로 이끌어가는 힘 역시 주요 자질이다. 특히나 단원들에 대한, 사람에 대한 ‘존중’은 지휘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로 꼽는다.

“지휘자라는 직업은 우리가 사는 시대에 따라 개념과 인식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지휘자는 수십 명의 설득하기 위한 일관된 음악 철학을 가지며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주되 한 사람 한 사람의 존경할 만한 음악가(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표현하기 위한 현명한 소통 방식을 가져야 해요. 그러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사람에 대한 존중입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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