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탁을 위한 ‘그림로비’ 의혹으로 시작된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기업 자문료 수수 등과 관련, 국세청 및 기업들로까지 수사대상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전 청장이 자문료를 건네받는 과정에서 국세청의 고위 인사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의혹이 있는가 하면, 기업들은 세무조사를 회피하기 위한 대가로 자문료 형식을 빌어 한 전 청장이 미국에 체류할 당시 도피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최윤수)는 31일 한 전 청장이 기업들로부터 받은 자문료 명목의 돈의 성격을 밝히는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 청장은 물론이고 그에게 돈을 건넨 기업들 모두 “정상적인 자문료였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검찰은 대가성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이 지금까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 전 청장이 기업들로부터 받은 돈은 모두 7억원 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엔 S사, H사 등 대기업을 비롯해 5개 주정업체 등 10여개 업체가 포함돼있는 상황이다.
자문료 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한 전 청장은 “30~40페이지의 보고서를 제출하고 정상적으로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통상 관례보다 액수가 큰 데다 기업들이 이미 현직을 떠난 그에게 돈을 전달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더욱이 국세청의 ‘입김’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주류회사 등이 자문 기업명단에 끼어있는 점은 자문료가 대가성이 짙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지난 2009년 1월 청장직을 사직하고 두달 뒤 미국으로 출국했던 한 전 청장이 기업들로부터 자문료를 받게된 과정도 의문 투성이다. 출국을 앞둔 그 짧은 기간동안 자문계약을 다 성사시킬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과 함께 한 전 청장의 측근인 장모 씨가 중간에서 돈을 전달해왔던 것으로 검찰이 확인하면서 국세청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검찰은 장 씨 외에 국세청 고위층이 자문료 건에 개입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또 현직 세무서장인 장 씨를 최근 재소환해 조사했지만 그는 “단순 전달자 역할만 했을 뿐”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은 자문료의 대가성이 드러날 경우 한 전 청장에겐 뇌물수수죄, 자문료를 모금한 국세청 관계자들에겐 범인도피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한 전 청장이 청장직 청탁을 위해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건넨 ‘학동마을’ 그림의 감정가를 산정하는가 하면, 이상득 의원 등 현정권 실세들에 연임을 위한 로비를 벌였다는 인사청탁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계속해 수사하고 있다.
<백웅기 기자 @jpack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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