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 사살을 보도한 석간신문을 아들의 영전에 올려놨다. 지난 10년간 한시도 아들을 잊은 적이 없다. 이제야 겨우 아들에 좋은 소식을 알릴 수 있어 무거운 짐 하나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일본인으로는 유일하게 테러에 이용된 여객기 ‘유나이트항공 93편’에 탑승해 희생됐던 구게 토시야(당시 20세)의 아버지 하지메(67)씨는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에 이같이 말했다.
‘테러의 상징’인 빈 라덴의 사망을 전세계 언론이 앞다퉈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9.11테러로 가족을 잃은 일본인 유가족들의 심경을 모아 3일 보도했다. 하지메 씨처럼 울분을 푼 유가족이 있는가 하면 “빈 라덴의 죽음으로 상처가 치유되진 않는다”는 유족들도 많았다.
10년 전 테러로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에서 근무하던 남편을 잃은 스기야마 하루미(45)씨는 “동일본 대지진의 잔해더미를 보고 끔찍했던 9.11 테러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며 “빈라덴 사망으로 테러가 일단락 되는 것도 아니고 슬픔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하루미 씨는 아빠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 아들이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라며 아이가 “(빈 라덴이 죽어서)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거야”고 물어 말문이 막혔다고 말했다.
그는 “알-카에다의 조직층은 두껍고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지도 모른다”며 “지난 10년간 미군이나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얼마나 많이 목숨을 잃었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테러가 무력으로 해결될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9.11 테러 당시 뉴욕소재 일본은행에서 근무했던 아들을 잃은 나카무라 나스쿠(69) 씨는 아들의 흔적을 찾아 그동안 ‘그라운드 제로’를 여러 차례 다녀왔다. 나카무라 씨는 “앞으로 이슬람권 젊은이의 분노가 테러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이러한 구조를 바꾸지 않는한 제2, 제3의 빈라덴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유가족은 빈 라덴의 사살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200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장세력에 납치돼 살해된 NGO활동가 이토 카즈야(당시 31세) 씨의 아버니 마사유키(63)씨는 “빈 라덴을 생포했어야 했다. 그래서 카즈야가 왜 살해됐는지 직접 재판장에서 따져 묻고 싶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