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미국의 부채한도 증액협상이 미진할 경우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무디스와 피치도 유사한 경고를 내놓은 바 있어, 소위 ‘빅3’로 알려진 국제적 신용평가사 3곳이 모두 미국 신용에 의심을 표시한 셈이다.
또 최근 무디스는 아일랜드 그리스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유로존 채무위기의 우려를 확산시켰다.
이같은 빅3의 신용 평가는 글로벌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하며 그들의 파워를 다시금 확인시켰지만, 이들 신평사의 뒷북ㆍ불공정 평가는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신평사, 그들은 누구인가=신용평가사(Credit Rating AgencyㆍCRA)들은 채무자의 신용을 평가하고 시장에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다. 이들이 발표하는 신용평가 결과는 투자자에게 투자의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무건전성 감독의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신용등급이 높다는 것은 결국 저금리로 돈을 빌려와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채권을 발행을 위해 높은 금리로 투자자를 끌어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과 같이 신용등급이 ‘정크(junk)’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면 연기금이나 펀드 등이 해당 채권에 대해 투자를 중지하게 된다.
현재 국가 및 지역별로 신평사는 30개 이상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신평사는 ‘빅3’로 불리는 S&P 무디스 피치 등이다. S&P와 무디스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피치는 영국(런던)과 미국(뉴욕) 두 곳에 본사가 위치해 있다.
이들 3대 신평사의 전성기는 지난 1975년부터 시작됐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오일쇼크로 촉발된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이들 3사에게만 국가공인통계평가기관(NRSRO)의 지위를 주고 투자은행 증권사 등의 투자적격 등급을 평가하게 하면서 ‘빅3’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누리게 됐다.
투자자들은 신평사가 평가한 신용등급에 촉각을 세운다. 신평사들이 평가한 등급은 어느 시장에 돈을 투자할 지를 결정하는 잣대로 작용한다. 국가에게도 신용등급은 중요하다. 국채를 발행하기 위해 신평가의 신용등급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평사, 이대로 괜찮은가=신평사, 특히 ‘빅3’의 신용 평가는 시장에 파문을 일으킨다. 특히 최근 그리스 신용등급 강등에서 보듯이, 이는 그리스 뿐 아니라 주변국에까지도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들의 입김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판단이다.
‘빅3’의 막강 파워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다. 당시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를 경고하지 못한 책임문제가 불거졌다. 더욱이 무디스 등은 서브프라임급 부채담보부증권(CDO)에 투자적격 최고등급을 부여하며 CDO 투자결과에 상관없이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기며 위기를 초래한 가담자로, 월가의 대형기관과 함께 위기의 진상을 캐는 의회 청문회에까지 올랐다.
또 최근에는 이들 신평사가 유로존 재정위기를 조장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S&P가 그리스 신용등급을 사태발발 반년이 지난 지난해 4월 정크 수준으로 낮추며 가라앉던 위기가 다시 유럽 전체로 확산시켰다.
이와 관련 마이클 바니어 EU 역내 시장위원은 “신용평가사들이 (유럽 국가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매기는 데 있어 투명성을 가져야 한다”면서 “기업이나 상품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한 나라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계 신평사에 대한 반발로 유럽연합(EU)은 현재 자체 신평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도 같은 행보를 하고 있다.
‘빅3’ 신평사가 잇따라 미국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이에 대해서는 뒷북 조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시장에 별다른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 시점에 내린 조치로, 선제적인 강등 조치를 내린 신흥시장 및 동유럽과는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신평사에 대한 불신은 높다. 지난 13일 미국 민주당 데니스 쿠치니 의원은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하자 “어떤 국가, 기관, 단체도 미국 정부를 평가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미 한국도 신평사의 혹독한 기준에 칼을 맞은 경험이 있다.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7년 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무려 10단계나 낮췄고 무디스와 피치도 각각 6단계, 12단계씩 깎아내린 바 있다.
서방 특히 미국계 중심인 신평사들이 제대로 된 평가를 내놓고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주관적인 견해를 배제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희진 기자/jji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