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성공 여부의 80%를 좌우한다”(필립스)
“아름답지 않은 제품에 소니 로고를 붙일 수 없다”(소니)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한결같이 경쟁력있는 디자인 확보에 매달린다. 디자인은 이미 부도 직전의 기업을 되살리고, 브랜드가치까지 뒤바꿔놓는 핵심 ‘권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접근법도 깊이가 더해졌다. 시각에만 의존하는 20세기형 디자인에서 한걸음 나아가 감성과 감각을 이해하고 교감하는 21세기형 디자인이 화두가 됐다. 이제 제품은 껍데기를 통해 소통하고, 정체성을 말하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디자인은 이미 겉치장을 너머 직관의 영역에 들어선 셈이다. 영국 출신의 베스트셀러작가 말콤 글래드웰도 저서 <블링크>에서 ‘우리가 상대방을 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지 2초’라며 외형이 주는 직관의 힘을 강조했다.
▶ 디자인 리더십으로 문화 ‘아이콘’되다= 세계 글로벌 기업 중에는 후발주자임에도 디자인 리더십으로 시장 판세를 뒤짚은 업체들이 상당하다. 1976년 소규모 컴퓨터 제조회사로 시작한 애플은 35년 만에 시가총액 3372억달러(약 364조원)로 세계 1위, 브랜드가치 1530억달러라는 성공신화를 쏘아올렸다.
이미 세계적 거대 기업으로 발돋움했지만 여전히 벤처처럼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 2ㆍ4분기는 매출액과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2%, 125%나 늘었다. 순이익은 7조 7000억원에 이른다. 스마트폰 아이폰과 태블릿PC 아이패드는 같은 기간동안 2000만대, 1000만대를 팔아치웠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애플의 기적에 가까운 성장 원천이 디자인 파워에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특히 애플의 심장이라고 할 스티브잡스는 디자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애플의 심볼은 한 입 베어먹은 사과. 뉴턴의 사과에서 따왔는데 베어먹은 형상은 바이트((byte)에서 착안했다. 바이트는 정보의 최소 단위인 비트(bit)의 집합으로 구성된 컴퓨터의 기본 단위이며 ‘깨물다’와 발음이 동일하다. 그가 1985년 애플사에서 퇴출 당한 후, 재기발판이 됐던 픽사(PIXXAR)도 컴퓨터그래픽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 회사다.
반대로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하며 IT공룡으로 불렸던 모토로라, 노키아의 쇠락 뒤에는 디자인 정체가 한몫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스타벅스,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 상품을 넘어 문화 아이콘으로 등극한 업체들도 디자인 경영을 통해, 확고한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 디자인, 위기극복ㆍ재도약의 ‘열쇠’= 디자인은 위기에 빠진 기업을 살려내기도 한다. 나이키는 기술과 디자인의 완벽한 조화를 발판으로 어려움를 극복, 세계 최대 스포츠 기업으로 우뚝 선 사례다.
우선 막강한 브랜드 파워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스우시(swoosh) 마크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 날개를 형성화한 것이다. BI가 이미 브랜드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1980년대 성장정체기에 빠진 나이키는 스테디셀러 에어조던이라는 ‘걸작’을 내놨다. 당시 미 프로농구(NBA)의 전설 마이클 조던이 아디다스를 원하자 그만의 농구화를 만들기 위해 이노베이션 키친을 꾸렸다. 투입된 디자이너만 30여명에 이르렀다. 1985년 에어조던은 출시되자마자 컨버스를 단숨에 꺾고 농구화 시장 1위에 올라섰다.
1999년 회사 존폐기로에 설 정도로 위기를 맞자 새롭게 선임된 앨런 래프리 CEO는 디자인 혁신에서 활로를 찾았다. 2000년대 초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도 디자인 인력은 4배로 늘렸다. 5년간 150명의 경력 디자이너를 영입했다.
특히 매출 부진을 겪던 프링글스는 과자 표면에 글씨를 새겨넣으면서 반등에 성공했다. 퀴즈나 유머, 상식, 귀여운 캐릭터 등을 인쇄해 먹는 재미를 배가시킨 것. 프링글스 프린트가 호응을 얻으면서 매출은 6개월 만에 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강필현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전략연구실장은 “디자인은 피상ㆍ형이하학적인 아름다움을 떠나 고객에게 전달되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에 디자인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업체들의 경쟁은 한층 심화될 것”고 내다봤다.
<김민현 기자@kies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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