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엔 남자 연예인과 일반인 여성을 맺어주는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이 신설됐다. 3박4일 합숙촬영이지만 야간녹화는 거의 없었다. 연예인이었기에 ‘공인’ 답게, ‘오버’하는 행동을 삼갔고, 여성 출연진도 카메라 앞에서 담대했다. 나중에 확인된 일이지만 여성 일반인 출연자들은 대부분 연예인 지망생이었고, 출연자중 60%이상이 실제 데뷔한다. 게임하고 춤추는 화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단체로 모여 감성어린 고백들을 주고받지만 출연자들의 미세한 심리 변화가 적나라하게 전파를 타지는 않았다.
역시 2002년 가을 시작된 남녀 연예인 커플 잇기 프로그램 ‘천생연분’은 출연자의 자기결정이라는 '리얼'성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각본에 의존했고, ‘시청자 보여주기’ 차원에서 고안된 오락물이었다.
2011년 시작된 일반인 연인맺기 프로그램 ‘짝’은 달랐다. 촬영지 도착부터 최종선택까지 6박7일간 수십대의 고정 및 이동카메라가 곳곳에 배치돼 출연한 일반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찍는 것은 물론이고 미리 녹화한 가정과 사생활까지 공개된다. 시시콜콜한 장면속에는 새벽부터 심야까지 잠 덜 깬 모습, 민낯, 메이크업 과정, 잘 때 입는 옷차림, 감정의 기복, 속칭 ‘어장 관리’ 행태, 유혹, 배척, 호감 비호감 고백과 이유, 감정의 이동, 소외, 고독, 눈물, 막말, 말의 번복, 들통 나는 자랑, 경쟁의 승패와 그 영향, 출신 학교와 전공, 현 소속 법인과 부서 등이 고스란히 안방에 전해진다.
화장실을 제외하곤 침실,거실,주방,앞마당,뒤안,정원,차 안 등 모든 장소에 카메라가 설치돼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전세계 사람들이 구경하는 영화 ‘트루먼 쇼’와 비슷하다.
연예인 조차 치부가 노출되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일반인들로서는 당혹스런 일이 적잖을 만 하다. 동네에서 소문나면 동네망신이지만, ‘짝’에서 당하는 민망함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적 망신이다. ‘스스로 출연신청해 제 발로 왔다’는 항변은 제작진이 출연자들의 감정과 사생활 관련 콘텐츠에 대한 재량권을 전면적으로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현행 명예에 관한 법률은 연예인까지 공인으로 의율하지만 일반인들의 경우 사소한 불명예 요소, 프라이버시 라도 타인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자살사건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기법과 관리운영의 문제를 떠나 근본적인 제작마인드의 안일함에 ‘깊은’ 원인(遠因)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불명예스러운 모습으로 전파를 타고 공표되어질 출연자의 수치심 크기와 심각성’에 관심을 덜 기울인 것이다. 오랜 기간 인간의 취약성을 연구해온 미국의 사회복지심리학자 브린브라운은 일찍이 이렇게 진단했다.
“수치심은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지옥처럼 캄캄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거부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아웃사이더가 된 느낌이다. 수치심은 자기혐오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결점을 들켰을 때 느끼는 것이다. 그런 결점을 들키느니 차차리 죽어버리는게 낫다.”
브라운 교수는 수치심이 개선의 원동력으로 선용되기 위해서는 관계인들의 ‘수치심에 귀 기울이기(Listening to shame)’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심리학적으로 치부(恥部)를 방어하는 20가지의 기제가 있지만, 숨진 전모씨는 어느 것 하다 써보지 못하고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불행한 최후를 선택했다.
프로그램 존폐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방송사는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제작하든 시민의 인권, 명예 보호를 최우선과제로 삼아야 한다. 대중적 노출에 익숙치 않은 사인(私人)들이 방송을 탈 때의 감성은 만지면 깨질 우려가 큰 유리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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