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에 나간 남편은 ‘골프를 잘 하면서 괴테나 베토벤을 생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미국 풍자저널리스트 헨리 루이스 멘켄의 말을 실감한다. 칠수록 좌절이 많은 필드에서는 골프를 넘어 인생사 배울 것도 많으니 마나님 생각은 나지 않는다. 그래서 1927년 US오픈 골프대회 첫 우승자였던 토미 아머도 사랑과 골프의 양립 가능성을 두고 고민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사랑과 퍼팅은 불가사의한 숙제다. 이 두 가지 명제 모두를 푸는 건 골퍼들에게는 무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 |
▶골프는 예술이다=“다음엔 꼭 모시고 와야지” 다짐하면서도 내가 필드에 나가 있는 동안 만큼은 마나님도 편안하다면 그것에 일단 만족하자. 봄이 골프를 부른다. 어루만지고 후려 패기도 하면서 필드가 가려워하는 곳을 조근조근 긁어주는 골프의 여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이다.
스토리와 명작을 만나는 요즘의 골프장은 굳이 베토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예술의 향기가 짙다. 페블비치와 세인트앤드루스엔 머지않아 ‘선수들’이 찾을 것이다. 작품 같은 이 봄, 이곳을 선점해보는 것도 스코어와는 무관한 포만감을 안길 것이다.
1919년 개장한 미국 페블비치 골프장은 이미 클럽을 넘어 관광지다. 전세계 많은 젊은이가 이곳에서 야외 결혼식하는 것을 꿈꾼다고 한다.
파3인 17번홀은 악명이 높다. 강한 태평양 바람 때문에 온그린 자체가 어렵다. 그린을 직접 노릴수록 그린과 멀어진다. 세기의 명승부로 불리는 1977년 US오픈에서 톰 왓슨이 잭 니클라우스를 물리칠 때 이 17번홀 주변 러프에서의 칩샷 버디가 결정타로 작용했다. 잭 니클라우스가 “죽기 전에 마지막 라운드를 한다면 페블비치에 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기억에 깊이 각인된 코스다. 서부영화 단골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황야를 버린 지 오래고, 지금도 페블비치 ‘신의 바람’과 결투를 벌이고 있다.
페블비치 링크스 7번홀 |
▶17번홀 승부처라는 공통점=잭 내빌이 설계한 페블비치 링크스는 내륙쪽 1, 2, 3번홀이 해안선을 따라 배치돼 태평양을 바라보는 반도 모양의 8자형 레이아웃을 유지하고 있다. 7번홀(파3) 티박스 뒤로는 거센파도가 마치 기업사냥꾼처럼 으르렁거리지만 공이 나아갈 방향은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브리티시 오픈골프대회 개최장소인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는 원래 종교와 학문의 중심지였다. 에든버러의 북동쪽 약 48㎞지점 북해 연안에 있는 이곳엔 약 700년 전 지어진 중세 스코틀랜드 최대 교회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졌고, 1411년 창설된 스코틀랜드 최초 대학인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은 아직도 남아있다. 1754년 이곳에서는 세계 최초의 골프클럽이 생겨, 골프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다.
고풍스런 클럽하우스에서는 마나님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2006년까지는 금녀구역이었으나 2007년부터 여성들의 출입이 허용됐다. 브리티시 여자 오픈은 2007년 이 골프장의 올드코스에서 열렸다가 2013년에야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우승자 스테이시 루이스가 포즈를 취했던 스톤브리지는 차라리 문화재이다.
깊은 원기둥 모양 항아리 벙커가 있는 17번홀은 늘 승부처였다. 우승을 다투던 최나연은 3, 4라운드 연속 이곳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루이스는 버디를 기록하며 역전했다. 지난해에도 “17번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면 반드시 우승한다”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의 징크스는 통했던 것이다.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 마의 17번홀 항아리 벙커 |
▶에드워드 7세의 추억=사실, 미국 이 외 지역 최고 골프장의 명성을 가장 오래 지켰던 골프장은 1889년 건설된 북아일랜드 로열카운티다운이다. 로열카운티다운은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서 승용차로 1시간쯤 남쪽으로 달리면 만날수 있다. 다운주(州)의 던드롭만과 모언산맥에 둘러싸인 뉴캐슬이라는 아름다운 해변 도시에 자리 잡았다. 1908년 왕 에드워드 7세가 로열(왕립)의 지위를 이 코스에 부여했다.
검푸른 대서양과 페어웨이 주변 노랑색 가시 금작화, 멀리 푸른 초원 위 양떼와 오두막 풍경이 극명한 대비의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린, 아름답지만 터프한 코스는 도전정신과 오기를 부추긴다. 클럽헤드를 떠난 공이 금작화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곳을 향했다면, ‘로스트 볼’을 각오해야 한다.
이 밖에 골프규칙이 제정되고, 현대식 클럽하우스의 전형이자 효시가 된 미국 뮤어필드와 도서관 전문 건축디자이너 스탠퍼드 화이트가 클럽하우스를 설계한 2018년 US오픈 개최 예정지 미국 시네콕힐스도 집 나온 사나이의 객기를 자극한다. 해외 명품 골프장이라도 그린피는 국내 유명 골프장과 비슷하다.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이 극찬한 롯데스카이힐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
▶이병철 회장의 예술사랑 안양CC에 투영=국내 명품 골프장은 최근 예술과의 접목, 리노베이션 등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세계 40위, 아시아 2위에 오른 안양CC는 구성수, 이기봉 등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작가 작품을 클럽하우스 내에 전시하고 로비에는 억원대를 호가하는 일본계 미국 아티스트(가구작가)인 조지 나카시마의 원목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했다. 1965년 자기재산의 3분의 1을 삼성문화재단에 쾌척하는 등 문화예술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뜻이 반영된 결과다. 그는 생전에 자식들에게 “아름다운 작품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라. 예술 작품과 작가에 대한 예의다”고 가르쳤다.
경기도 여주의 헤슬리나인브릿지는 대기업 오너가문 회원들이 즐비하다. “회원들이 바빠서 필드에 자주 못 나오니 라운딩당 가격은 수백~수천만원”이라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클럽하우스는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시게 루반이 친환경 목조를 가미해 지었다. 클럽하우스는 세계 3대 국제 건축상 중 하나인 ‘World Architecture Awards’ 최우수상에 뽑혔다.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이 롯데스카이힐 제주 캐디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조지 부시가 놀란 롯데스카이힐 제주=롯데스카이힐 제주는 프로대회 단골 개최지다. KLPGA 개막전인 롯데마트 오픈에 이어 6월에는 롯데 칸타타 오픈이 열린다. 남자로는 골프장 이름을 딴 오픈대회가 2005~2006년 개최된 데 이어, 2013년에는 헤럴드 KYJ 투어챔피언십이 열려 한국남자프로골프 마지막왕좌를 가렸다.
벤트그라스를 식재해 4계절 푸르고 미국 100대 골프장 중 13개를 설계한 RTJ사의 장인정신이 배어 있다. 보이지 않는 함정이 많아 작은 실수 하나로도 많은 타수를 기록하지만, 코스가 가려워하는 곳을 정확히 긁어주면 경쟁자와 점수차를 벌릴 수 있다. 이동형 GPS 시스템으로 어디서든 코스 매니지먼트가 가능하다.
2009년 8월 이곳을 방문했던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내 고향 텍사스 어느 곳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골프장은 없다. 레이아웃도 훌륭하고, 직원의 친절도가 매우 높다”고 극찬했다.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하우스는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데, 서울 강남역 명품 오피스텔 ‘부띠끄모나코’로 유명한 건축가 조민석 씨가 설계했다. 춘천 휘슬링 락의 클럽하우스는 길이 140m짜리 거대한 배가 항해하는 모습을 닮았으며, 유러피언투어 밸런타인 챔피언십 대회가 매년 열리는 경기도 이천 블랙스톤CC는 웅장한 궁전형 클럽아우스와 미술전시관 ‘더 갤러리’를 자랑한다./abc@heraldcorp.com
<미국 페블비치 그룹 그린피> (단위:달러)
골프 코스 리조트손님 非리조트 손님
페블비치 골프 링크 코스 495(카트비 포함) 495+카트비 별도
스파이 글래스 힐 코스 370(〃) 370+ 〃
스페니시베이 링크 코스 265(〃) 265+ 〃
델몬트 골프 코스 110 + 카트비별도 110+ 〃
렌털(캘러웨이세트) 95 95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그린피> (단위:파운드)
골프 코스 1~3월 비수기 4월 1~13일 4.14~10.19 성수기 10.20~31 11.1~12.31 비수기2
올드코스 77 108 160 112 80
캐슬코스 60 84 120 84 60
주빌리코스 35 50 75 53 37
에덴코스 20 28 45 32 22
초보자코스 12 18 30 21 15
밸고브코스 8 8 15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