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도 파괴하며 로비 일삼는 전관예우…
그들에게 대형참사는 묵인된 나태이자 직무유기2014년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7분 세월호 4층 객실 안에 있던 안산단원고 2학년 박수현군과 그 친구들의 표정엔 그래도 희망이 어려있었다. 한 학생이 전남소방본부에 첫 신고를 한지 15분쯤 지난 때였다.
“아, 실제상황이야”라는 걱정스런 대화 사이로 가벼운 농담도 들린다. “나 그러고 보니까, 나쁜 짓은 별로 안했는데…”,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가슴 찡한 성찰과 고백도, “선생님들은 괜찮은 건가”라는 걱정도 있었다. 그로부터 20분가량 ‘이동하지 말라’는 안내방송만 하염없이 나온다. 어른 말 잘 듣는, 참 착한 아이들이다.
9시37분쯤 2학년3반 박예슬양과 친구들은 객실에서 나와 복도에 모여 기울어진 벽을 바닥삼아 누워 구조를 기다린다. 그 시간 밖에선 해양경찰 구조정이 도착했지만, 아이들은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도망가는 사실을 몰랐고, 헬기소리만 듣는다.
“헬리콥터가 와”, “얘들아, 원래는 이건데”라는 안도의 목소리, “힘들어 살려줘 살려줘”, “엄마 보고싶어”, “살 건데 뭔 소리야 살아서 보자”는 호소와 희망이 교차한다. , “구조 좀…”이라는 말을 해보지만 구조대는 그러나, 도착한지 40분이 지나도록 아이들을 찾지도 부르지도 않는다. 10시11분 45초. 박수현군은 공포에 질린 아이들 표정을 마지막으로 폰카에 담고는 더 이상의 촬영도 아무 말도 없다.
죄 없는 아이들 300명이 차디찬 물에 갇히기 전, 구조할 기회는 숱하게 많았지만, 이를 실행하지 못한 데에는 선원들의 살인적 파렴치가 있었다. 그리고, 해경의 구조수칙 위반, 출항전 화물적재량을 거짓작성한 해운조합의 불법행위, 구명정 1개만 정상인데도 44개가 정상이라고 허위보고한 한국선급의 부실검사가 저승사자처럼 임했다.
현장 대처에 미숙한 경찰관들 위에는, 본청서 수뇌부의 참모 일만 주로 돌았던 행시 출신 유학파 해경청장이 있었다.
해운조합 요직 4자리 중 3자리를 해수부ㆍ해경 전관(前官)이 나눠먹는 등 선사의 부조리와 선박 불법 증축을 검사ㆍ감독하고 해양 안전을 책임져야할 해수부 산하기관 11곳을 이들이 장악했으며, 이들 전관들은 선사들이 낸 갹출금(공제회비)으로 봉급 받는 ‘이해못할 카르텔’이 존재했다.
해수부 장관은 판사와 국회의원을 지낸 ‘낙하산’ 비전문가이다. 그는 박근혜 대선후보 선대위 특보단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월호의 아이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동안, 선사의 정ㆍ관계 로비 의혹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1995년 삼풍백화점 회장으로부터 불법 설계 변경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서초구청장 등이 뇌물을 받은 검은 유착은 502명의 희생자를 낸 붕괴 참사로 귀결됐다.
배와 승객을 대충 관리해도, 필사적 구조를 하지 않아도, 별 탈이 없는, 전관예우와 보은 인사, 측근 참모 발탁, 낙하산 임명, 로비와 도덕불감증으로 점철된 탐욕의 커넥션은 참사 유발 시스템이다.
살인자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산관(産官)유착’ 속에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상습체불관행(속칭 쓰메끼리)은 수십년 묵인돼 전북 순창의 40대 기사를 자살로 내몰았고, 권력층이 뇌물 받고 비호해 준 ‘금정(金政)유착’의 저축은행에 수천만원을 떼인 부산의 행상 할머니는 몸져누웠다.
관료조직의 우정을 가장한 비리, 선거를 도와준데 보은한다며 전문성을 무시한 개국공신 낙하산 인사는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만행이라고 세월호의 아이들은 아우성친다. 전관예우와 낙하산은 온나라의 원칙과 윤리를 파괴하면서 머지않아 또 어떤 참사를 빚을지 모른다.
구조대가 도착한지 45분쯤 지난 4월16일 10시17분. 배가 급속도로 침몰할 때, 어느 착한 학생은 끝내 분노하더니 “정말 분통이 터진다”는 마지막 SNS메시지를 ‘검은 카르텔’을 향해 보낸다. 그리고 10분후 배가 침몰하는 동안, 한 맺힌 세월호 아이들은 성난 눈빛으로 부활했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