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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세상 경영, 이공계
어학 등 인문사회학 지식은 기본…‘양수겸장형’ 선호 현상 뚜렷
국내 1,000대 기업 CEO중
절반 가량이 이공계 출신들…대기업 공채도 80%이상 차지
전문 영역 벗어나 전방위 활약…통섭형 인간 새로운 인재상으로…


‘뻥 대장 문과생’, ‘정치책=무술 교본’, ‘문과 흘러간 역사속에서 헤맬때, 이과 미래를 향해 달린다.’ (이과생이 문과생에게)

“이과, 뛰어봤자 발밑이다”, “사기당하면 와라, 아프면 가줄게”, “공돌이들 내 밑으로 면접 보러와” (문과생이 이과생에게)

2004년 경기도 A고교 체육대회를 앞두고 이과ㆍ문과반 간 격문 대전(大戰)이 벌어졌을 때, 웃음과 씁쓸함이 교차했다.

격문 내용은 당시 상황에 비춰 그럴 듯 했다. 기업 경영진은 문과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마케팅과 회계에 약한 이공계출신 경영자들이 기업사냥꾼 등 숱한 장애물 때문에 고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치는 그때도 싸움박질이었던데 비해, 기업은 미래형 기술혁신을 통해 글로벌 플레이어로 거듭나던 때였다. 당시 문ㆍ이과반 선택 비율은 65대35 가량으로 문과 열풍이 사상 최고조였다.

그러나 10년후인 2014년,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1000대 기업 최고경영자의 절반 가량이 이공계 출신으로 채워졌고, 올 상반기 대기업 공채에서 이공계출신이 80%이상 뽑혔다. 올초 집계된 작년 전국대학의 전공별 취업률 집계결과, 인문계는 40~50%대, 자연계는 60~70%대였다. 이공계를 대거 선발한 대기업이 작년부터 인문학 소양 테스트와 어학능력 정밀 검증을 하면서, 이공계생들의 인문사회학 소양도 커졌다.

10년전 이과생을 겨냥했던 문과생들의 격문들은 지금의 현실을 반영할 수 없다. 취업과 승진만 따지면 문과가 발 밑이고, 면접 볼 임원들도 이공계가 인문계 못지 않게 많은데다, 공학도들이 양수겸장형으로 거듭나면서 사기당할 우려도 줄었다. 일부 대기업은 마케팅분야까지 이공계출신에 개방했다.


한 기업체 인사담당 중역은 “인문,사회학,어학은 지식이라기 보다는 상식이나 소양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이미 실사구시의 전공 지식을 갖춘 이공계 출신자가 ‘소양’을 갖추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인문계 출신이 뒤늦게 자연과학적 지식을 겸비하기가 쉽지 않다는 인사담당자들의 판단이 이공계 출신자를 선호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이다. 그간 우리의 인문계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한국적 전통과 이공계 인력 발탁에 인색한 정치권,행정부의 논리에 안주한채 탐구와 쇄신과 통섭 노력을 게을리한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도된 문,이과 분리형 수능시험 방식과 교육시스템도 문제이다. 일본 도쿄공대 하시즈메 다이사부로(橋爪大三郞) 교수는 ‘메이지 시대, 칠판과 노트만으로 공부할 수 있는 문과계에 비해 이과계는 실험설비를 갖추는데 돈이 많이 들었고, 교육비용을 줄이기 위해 수학 시험을 치러서 이과계와 문과계를 나누었다’고 폭로했다. 한국교육의 문,이과 분리는 19세기 일본 교육의 비합리적 편의주의를 답습한 것이다. 이제라도 전인적 인재 양성을 위한 시스템의 창조적 파괴가 이뤄져야 한다.

역사는 새로운 자연과학적 발견에 따라 바뀌었고, 그에 따라 생활양식, 도덕률, 사회관계, 정치구조, 시대철학이 변화되는 과정을 밟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대의 현자는 아르키메데스, 세종대왕, 뉴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정약용처럼 통섭형 인간이었다.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충실히 자연을 관찰하여 자연을 통역하라’고 했다.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등이 이루어낸 성과를 사회학이 달성하려면, 이 학문들과 동등한 엄밀한 기초, 즉 과학으로서 어떤 학문이 대상으로 삼는 것의 실재적 구성 요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확보해야 한다”는 장 가브리엘 타르드의 말은 문과계 학생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이과계 역시 여전히 심미안, 설득ㆍ협상ㆍ정치력, 법학, 역사인식 등에서 ‘못갖춘 마디’가 적지 않다. 알고보니 낭만주의자였던 아인슈타인의 혀 내밀고 있는 사진 한 장은 이과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미적분을 풀다가도 위대한 통섭형 인간의 전기를 읽자.

함영훈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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