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여준영 대표(45)는 PR업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2000년 컴퓨터와 직원 3명으로 시작한 PR 그룹 ‘프레인글로벌’을 창업해 5년만에 직원이 200명이 넘는 국내업계 1위로 올려놨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세계 70위(홈즈리포트 기준) 정도 된다. 클라이언트만 100여개가 넘는다. 그중에는 삼성, SK도 있고 청와대도 있다. 지난해에는 G20 서울컨퍼런스 홍보, 최근에는 교황 방한 홍보 업무를 각각 수행하기도 했다.

‘프레인(Prain)’은 ‘PR’과 ‘Brain’을 조합한 사명이다. 현재는 PR과 마케팅, R&D 관련 몇몇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외식사업부 퓨어아레나를 운영하고, 영화 제작, 배급에도 나섰고, 류승룡 김무열 문정희 오상진 문지애 오정세 양익준 등 20여명의 연예인이 속해있는 매니지먼트사 프레인TPC까지 가동하며 ‘프레인글로벌’이라는 문화그룹으로 발전하고 있다.

설립자인 여준영 대표는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있다. 명함에도 직함이 없다.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물었더니 ‘콜렉터’나 ‘인베스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서로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에코시스템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준영 대표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헌트(Hunt)’라는 제목의 블로그에도 고민들을 남겨놓고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여 대표가 기업을 만들어 성공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거창하지 않고 현실적이어서 더욱 귀기울이게 된다. 여준영 대표의 인간적인 매력이 무엇일지도 궁금해진다.

프레인 여준영 대표 인터뷰,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한 여 대표는 1994년 동기들이 입사하는 금융권 대신 코오롱 그룹에 입사해 기획조정실 홍보팀에서 일했다. “아르바이트 하느라 학점이 너무 안좋아 시험성적만 보는 기업에 갔다.”

그는 홍보업무에다 여자골퍼 김미현의 매니저로, 황영조 이봉주의 스포츠마케팅 업무까지 봤다. 당시만 해도 심야에 미국 LPGA에서 뛰는 김미현의 아버지에게 전화해 스코어를 챙겨 다음날 출근하자 마자 골프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보내던 시절이었다.

▶기존 PR업계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PR회사를 차려 시스템을 확립하다=코오롱에서 7년간 일하다 1999년 한별텔레콤이라는 IT기업으로 옮겼다. 벤처붐이 생기며 홍보가 중요해졌지만, 밴처사들이 회사 규모가 작다보니 자체에 홍보팀을 두지 못하고 아웃소싱하던 시점이었다.

“당시 여기저기서 홍보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프리랜서로 홍보업무를 봐주었다. 그러다 2000년에 아예 강남 포스코 옆 조그만 빌딩에 월세 60만원 사무실로 들어가 홍보사를 차렸고 곧 홍대앞으로 전세로 옮겼다. 당시 6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중 한 명은 부사장, 두 명은 상무로 근무하고 있다. 나는 코오롱 사장이 목표였지만 당시 벤처붐, 투자붐으로 늘어난 홍보수요때문에 회사를 차리게 됐다.”

그는 당시 결혼했는데, 새벽에 퇴근할 정도로 일에 파묻혀 여권기한이 만료된 줄도 모르고 있다가 신혼여행도 못갈 뻔 했다.

“회사는 급성장했다. 5년이 지나자 연 매출액이 100억 가까이 됐다. 이익도 많이 남았지만, 월급외에는 15년동안 한푼도 쓰지 않고 투자나 저축을 했고, 배당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PR업계는 크게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00% 외국계 회사와 100% 개인회사다. 두 종류의 회사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여준영 대표는 이들의 장점만을 받아들여 클라이언트에 가치를 주고 시스템을 확립했다. 이제 프레인의 시스템을 사가는 회사도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홍보대행사는 진입장벽이 낮은 업종이다. 대기업 홍보담당이나 기자 출신이 책상 하나만 있으면 홍보사를 차릴 수 있다. 그래서 시스템이 필요했다. 나는 2000년부터 5년간 경쟁PT 현장에서 직접 뛰었다. 한번도 경쟁 PT에서 진 적이 없다. 홍보대행사도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 대표는 설립 5년만인 2005년에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자신은 은퇴해 쉬려고 했으나, 계열사를 디자인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PR을 하려면 할 게 많다. 영상, 디자인, 인터넷의 노하우가 없으면 PR이 안된다. 그래서 트레이라는 PR전문사를 인큐베이팅한 후 프레인 창립후 아르바이트로 입사한 1호직원을 사장에 임명했다. 웹사이트와 디지털 디벨로핑을 전문적으로 하는 디지털에이전시 마커스도 설립했다. 

▶영화제작배급, 배우 매니지먼트업에도 진출, 문화그룹으로 성장하다=여준영 대표는 2011년 배우 김무열을 만났다. 아는 PD가 괜찮은 친구라며 도와달라고 했다. 김무열에게 밴을 내주고, 매니저를 붙여주며 수입을 김무열에게 다 가져가라고 했다. 이게 프레인TPC의 출발이었다. 여 대표는 2011년 영화 ‘최종병기 활’에 출연한 김무열의 매니저로 현장을 뛰었다. 1년후 회사가 스타를 착취해도 안되고, 스타만 이득을 챙겨도 안되는, 서로 윈윈하는 에코시스템을 만들자고 했다.

“류승룡 씨는 ‘최종병기 활’ 촬영장에 계속 나타나 김무열을 봐주는 저를 보고 매니지먼트를 부탁해왔다. 그후 류승룡씨는 빵빵 터졌다. 프레인TPC가 커지는 데 류승룡씨가 한몫했다.”

여준영 대표는 연예 매니지먼트사도 조금 다르게 운용한다. 돈을 잘 못버는 연예인에게는 50만원~200만원의 월급을 준다. 나중에 벌면 갚아야 하는 돈이다. “돈을 못버는 신인배우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게된다. 월급은 연예활동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연예기획사를 하다보면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스타일리스트비, 주유비, 간식비.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20명이 넘다보면 일년에 10억원이 넘는다. 일반적으로 스타와 회사가 이를 나눠 정산하지만 프레인TPC는 회사가 모두 부담한다.

여 대표는 영화에 대한 투자, 제작, 배급, 수입업에도 나섰다. 영화 ‘50/50’과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인 ‘잉투기’ 등을 후원하고, 윤계상과 고준희가 출연한 영화 ‘레드카펫’ 배급을 맡기도 했다. 그는 배우가 있고, 홍보마케팅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두고 있어 투자비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낙관했다.

“영화협동조합 출범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도 좋은 영화를 수입하고 제작할 것이다. 한국영화는 대작 아니면 독립영화 두 종류밖에 없는 것 같다. 중간 영화가 별로 없다. 나는 좋은 감독, 쉽게 만드는 감독을 발굴해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상업적인 영화는 아닐 거다. 한창 촬영중인 ‘동피랑‘으로 영화제작업에도 본격 진출했고, ‘이끼’ ‘은교’의 정지우 감독과도 6편의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정지우 감독은 첫 편만 감독을 맡고, 나머지는 모두 신인감독이 만든다. 이를 ‘진루타 프로젝트’라고 이름붙였는데, 우리는 죽더라도 신인감독과 배우는 살리자는 뜻이다.”

프레인 여준영 대표 인터뷰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목표를 작게 세워라=여준영 대표는 PR그룹으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목표는 작게 세워라고 말한다. “목표를 원대하게 잡으면 갭이 커진다. 매니지먼트 일을 하다보니 류승룡이 왔고 소속연예인이 20명이 된 거다. 인생 자체가 그런 것이다. 한계단씩 올라왔다. 한번도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없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높은 곳에 올라와 있는데, 그런 계획이 없었다.”

그는 돈 없이 시작한 이 사업체를 홍대앞으로 옮길때의 목표가 좋은 팩스를 사는 것이었다고 한다. 큰 사업 계획은 없었고, 눈앞의 도달가능한 목표, 꼭 필요한 것들을 해야겠다고 작정했다.

“꿈을 원대하게 가지는 순간 비극이 생기더라. 큰 꿈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포기’일 수 있다. 먼 일을 바라볼때, 도달 불가능하게 보일 때 포기하게 된다. 목표를 크게 세우는 사람이 포기한다. 꿈이 작은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큰 꿈이 있더라도 넣어두고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을 하자는 주의다. 코오롱에 근무할때 스포츠지 직장인 명예기자로 일했는데, 지누션이 데뷔한다고 인터뷰할 때부터 양현석을 관심있게 봐왔다. 양현석이 이런 걸 참 잘하더라. 남들이 수백번 한 것을 한방에 하려고 하면 안된다.”

여 대표는 영화도 하이라이트를 보면 재미있듯이, 편집된 남의 삶을 보면 부러워지고, 자신의 삶은 편집이 되지 않는 걸 보니까 재미없고 불행해보인다고 했다. “처음에는 얼마나 후졌을까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장 자리를 직원에게 맡긴 여준영 대표는 개인의 행복, 밸런스도 중요하다고 한다. 10년간 주말없이 일하다가 이제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귤을 따며 60박스를 식당인 퓨어아레나로 보냈다. 자신이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가더라는 것.

여 대표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일벌레였다. 일과 생활이 섞여버린 사람이다. 200명이 넘는 직원을 어떻게 챙기며, 수많은 클라이언트들을 어떻게 관리할까? 사는 게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건강한 사람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한가지씩 해나간다.

“어떤 면에서는 집요하지만, 어떤 데는 무관심하다. 나머지의 무심함이 나를 살려준다.”

그는 직원들에게도 무심한 듯하지만 직원을 위해 여성용 구두와 남성용 수트를 만들었고, 직원들에게 명품 기저귀 가방을 선물하기도 했다.

“클라이언트 관리를 잘 못한다. 전화도 잘 못한다.(아직 열어보지 못한 문자가 371개가 있는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무심해서가 아니라 그런 유전자가 있다. 그런 약점을 뻔뻔하게 가지고만 있으면 살아남지 못하는데, 가끔 마음의 표시를 한다. 코오롱의 홍보 담당일 때도 신문사를 찾아가 본 적은 없지만 그만 둘때 상세한 테헤란 지도가 그려져 있는 연하장을 3개월동안 작성해 500명의 기자에게 보냈다. 기자들이 꼭 필요한 자료라고 고마워했다. 평소 관리를 못하지만 그 한방으로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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