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스는 전세계 지도자들은 물론 살인범을 인터뷰하기 위해 미국 전역의 교도소까지 누볐던 스타 앵커다. 그는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일에 대한 집념으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바바라 월터스는 리처드 닉슨 이후 버락 오바마까지 모든 미국 대통령과 인터뷰를 했다.(출처=페이스북) |
월터스는 1961년 NBC 방송에서 ‘투데이쇼’의 작가 겸 조사요원으로 출발했다. 당시에는 여성이 방송에 등장해 전달하는 정보라고는 날씨와 스카프 매는 법 등이 전부였다.
그가 맡은 것도 여성들을 대상으로 패션, 화장법 등을 소개하는 5분짜리 코너였다. 뻔한 내용이었지만 그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만화를 활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월터스는 능력을 인정받으며 리포터로도 출연했다. 점차 방송 분량을 늘려나가다 마침내 1974년 여성 최초로 NBC 뉴스 프로그램 공동 진행자를 맡았다.
하지만 남성 공동 진행자인 해리 리즈너는 방송 도중에도 노골적으로 월터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월터스는 2008년 펴낸 자서전 ‘내 인생의 오디션’에서 당시 전국 여성들이 수백통의 편지를 보내 자신들이 당한 성희롱과 성차별을 털어놨다고 밝혔다. 그들은 월터스에게 “당신이 해내면 우리도 할 수 있을 거예요”라며 용기를 줬다.
월터스는 늘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방송을 준비했다. 월터스는 인터뷰를 하기 전 인터뷰 대상에 대한 기사를 모조리 찾아 읽었고, 연예인일 경우 인터뷰 대상이 출연하는 작품을 챙겨보는 등 철저하게 준비했다.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를 인터뷰할 당시에는 월터스가 “시도 쓰시던데요”라고 묻자 줄리아 로버츠가 “어떻게 알았느냐”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같은 프로정신으로 월터스는 전세계 유명 인사들과의 특종 인터뷰를 줄줄이 성사시켰다.
1977년에는 안와르 알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의 공동 인터뷰를 진행했고, 리처드 닉슨 이후 버락 오바마까지 모든 미국 대통령과 인터뷰를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장쩌민 전 중국 국가 주석,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인디라 간디 전 인도 총리, 무하마드 카다피 리비아 전 리비아 대통령 등도 만났다.
그 외에 마이클 잭슨, 캐서린 헵번, 그레이스 켈리, 달라이 라마 등 유명 인사들도 월터스와 마주 앉아 대담을 나눴다.
가장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지난 1999년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단독 인터뷰다. 월터스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성추문에 휩싸였던 르윈스키를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시켰다. 그녀가 등장한 두시간짜리 방송은 740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월터스는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을 살해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에게는 12년간 인터뷰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채프먼은 그동안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밝혔을 뿐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본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1992년 월터스는 미국 뉴욕의 한 교도소에서 채프먼와 만났다.
평생 인터뷰어로서 활약했던 월터스는 “인터뷰는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가장 성공했고, 가장 유명한 사람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런 그는 인터뷰이(interviewee)로서 오프라 윈프리와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정말 축복받은 삶이라는 건 알지만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걸 느낍니다. 나는 요리도 할 줄 모르고 운전도 못해요. 내 삶을 돌아볼 때마다 항상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왜 좀 더 즐기며 살지 않았지? 너무 일만 열심히 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산게 아닐까”
월터스는 “이 말을 듣자마자 오프라 윈프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고 회고했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