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중반 동서남북으로 세력을 더해가던 오스만 제국. 이웃나라인 헝가리까지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 돼버리자 오스트리아의 빈 시민들은 위기를 느낍니다. 전쟁의 공포.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지만 세상사 입장 바꿔 생각해 봅시다. 당신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역사에 보면 이맘때 공을 세우는 영웅이 혜성처럼 등장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이야기의 영웅은 터키어 통역관이었던 폴란드인 게오르크 프란츠 콜쉬츠키가 되겠습니다.
터키옷을 입고 몰래 터키군 진영에 잠입한 콜쉬츠키. 잠복하던 차에 그는 터키 사령관과 맞닥뜨립니다. 그런데 왠걸. 터키 사령관은 비에 쫄딱 젖은 그를 불쌍히 여깁니다. 어디로 가느냐며 안부도 묻고 따뜻한 커피도 건네죠. 기독교도의 포도주 사랑보다 알라신의 커피 사랑이 더 대단할 거라고도 합니다. 참 친절한 사령관입니다.
터키옷을 입은 게오르그 프란츠 콜쉬츠키 |
아무튼 이틀 만에 적장을 가로질러 나온 콜쉬츠키는 독일군 사령관에게 구원군 요청 편지를 전합니다. 임무를 완벽하게 해낸 것이죠.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오스만 제국의 오스트리아 정복전쟁은 시작됩니다. 오스만군 20만명이 전투대형으로 산개해서 도나우 강에서부터 산악지역까지 무지막지하게 떼지어 몰려옵니다.
빠른 전개를 위해 결과부터 말하면 터키군은 패배합니다. 바덴, 프랑켄, 바이에른의 군대들과 구원군까지 오스트리아의 지원 병력이 어마어마 했거든요. 기록에 따르면 “터키군 총사령관이 말 한 필과 옷 한 벌만 가지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덕분에 오스트리아 빈 시민들은 터키군이 두고 간 들소와 양, 곡식 등 수많은 전리품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수많은 전리품 가운데 이슬람 최고의 전사, 바로 ‘커피 콩’이 있었습니다. 까맣게 생긴 게 별 쓸모가 없겠다고 생각한 빈 시민들. 커피 콩이 담긴 자루를 불태우던 차. “맙소사, 그건 커피란 말입니다! 내가 그걸 사용할 줄 알아요!” 콜쉬츠키가 소리를 칩니다. 커피의 가치를 알았던 유일한 유럽인이었던 거죠.
아메리카노 위에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비엔나 커피.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유래된 이 커피는 3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
콜쉬츠키가 그 당시 커피를 마셔본 최초의 유럽인은 아니었습니다. 동방을 여행한 기독교인들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터키 사람들이 마신 음료를 기록한 안토니오 메나비노도, 아라비아 지역의 관목 기록을 남긴 삐에르 베롱도 커피는 알지 못했습니다.
17세기로 접어들면서 커피는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네덜란드의 상인에 대량으로 수입된 시기도 이쯤이고요. 18세기 초에는 클래식 명곡으로 꼽히는 바흐의 ‘커피 칸타타’까지 등장하죠. ‘커피 칸타타’ 악보에는 “1000번의 키스보다 더 달콤하고 사랑스러우며 머스캣 포도주보다 더 부드러운 커피의 맛이여”라는 가사가 반복돼 나온답니다. 커피는 수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한 충직하고도 아주 힘센 동반자가 아닐까요.
바흐의 ‘커피 칸타타’ 악보. 커피에 중독된 딸을 둔 아버지가 한탄하면서, “너에게 좋은 신랑을 중매해 줄 테니 커피를 너무 마시지 말아라”란 가사가 나온다. |
(*) 바흐의 ‘커피 칸타타’ Part 1 듣기 (4분 30초부터가 기자가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 바람난세계사를 검색하시면, 커피 역사에 대한 기사(2건)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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