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을 사용 중인 코난 도일(게티이미지) |
파카는 지난해 창립 125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듀오폴드 자이언트 리미티드 에디션’은 전세계적으로 125개 세트만 제작됐다. 16개의 다이아몬드와 18k금으로 제작된 이 만년필 가격은 4800만원으로 국내에는 1세트가 수입돼 화제를 불러모았다.
파카 ‘듀오폴드 자이언트 리미티드 에디션’ |
필기구로서의 만년필의 역할은 줄었지만 호사 취미로서 만년필의 가치는 더 뛰는 양상이다. 종이와 잉크, 펜촉이 어우러지는 만년필의 손맛은 디지털시대에 더욱 마니아층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만년필 명품 브랜드들은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정교하고 탁월한 기술과 미감의 고급 한정판으로 특정층에 다가가고 있다. 만년필의 역사는 애장자들이 써나가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애드슨 워터맨 |
국내 창업 1세대 중 멋을 알았던 고 이병철 회장이 즐겨썼던 만년필은 프랑스제 워터맨이었다. 메모광에다 최고만을 고집했던 이 회장은 회고록에서 애지중지한 물품으로 워터맨 만년필을 꼽고 “취미란 사업이나 인생의 교재”라며 그의 취미를 웅변했다. 2011년 창시자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을 기리기 위해 만든 워터맨 에드슨 다이아몬드 블랙은 현재 컬렉터들의 인기 아이템이다.
파카 시리즈 중 듀오폴드는 전통적인 디자인을 고수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장식성을 더해 리뉴얼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특히 파카 듀오폴드 오렌지는 1945년 2차 대전 태평양전쟁 일본 항복문서 조인식에 맥아더 장군이 이 만년필로 서명해 유명세를 탔다.
몽블랑 만년필을 사용 중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 |
고급 만년필의 대명사인 독일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는 정치 경제적 주요 문서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으며,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963년 독일, 프랑스 우호조약이 맺어질 당시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총리가 독일을 방문한 케네디 대통령에게 몽블랑 펜을 건네는 모습은 역사의 한순간으로 남았으며 1990년 10월 3일,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와 동독의 로타어 데메지에르 총리가 통일 조약에 서명할 때도 이 펜이 사용됐다.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조약에 서명한 펜도 이 펜이었다. 서독의 슈미트 전 총리,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스페인의 소피아 여왕 등이 몽블랑의 열렬한 애호가였다.
몬테그라파 만년필 |
이탈리아의 첫 펜, 몬테그라파 역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바사노에서 태어난 몬테그라파는 1차 세계대전 중 군사요충지였던 바사노와 초기 역사를 같이해 왔다. 전쟁 중 많은 병사들이 편지를 쓰기 위해 몬테그라파 ELMO펜을 사용했으며, 당시 자원 운전병이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존 도스 파소스 역시 이 펜으로 우아하고 힘찬 글을 써내려갔다. 보리스 옐친이 2000년 푸틴에게 자리를 넘겨주며 자신의 드래곤 펜을 선사한 건 유명한 일화다, 이는 권력의 이양을 뜻하는 제스처였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몬테그라파 엑스트라 1930으로 모든 서류에 사인했다.
용을 새긴 장식성 높은 이 펜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알 파치노, 빌 코스비, 나오미 캠벨, 마이클 잭슨, 마이클 슈마허, 지네딘 지단, 파울로 코엘료 등 특히 문화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몬테그라파는 2000년 11월 럭셔리 그룹인 리치몬드에 인수된 후 2001~2005년에는 카르티에 산하에 있다가 결국 몽블랑 아래로 들어갔다. 인수합병의 짧은 여행을 거쳐 몬테그라파는 2009년 다시 이탈리아의 품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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