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한민국에 갑질이라는 화두를 던져준 이른바 ‘땅콩리턴 사건’에 전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를 이 사건이 가진 전근대성으로 본다. 직원을 노예처럼 여긴 사건이란 점에서 그렇다. 조현아의 행동 뿐만아니라 시범케이스로 잡고 욕을 퍼븟고 한 사람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조롱하고 기필고 갑을 응징했다는 분위기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박민규의 에세이는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소개하는데서 시작한다. 어느날 갑자기 거인들이 나타나 인간을 잡아먹는다. 거기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인간은 죽을 힘을 다해 오십미터 높이의 벽을 쌓아올린다. 거인들은 벽을 넘지 못해 백년의 평화가 이어진다. 그러다 초대형 거인이 나타나 벽을 허물고 순식간에 인간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역시 이유는 없다.
진격의 거인을 모티브로 그는 인간사와 개인사가 모두 그런 약육강식의 싸움이었음을 풀며, ‘땅콩회항’ 사건 역시 그 맥락안에 있음을 얘기한다.
작가가 초점을 맞춘 건 ‘조현아의 땅콩’이 아닌 전국민적 갑질 분노라는 현상이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가 이토록 갑질에 분개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지 못하겠다.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해도, 천문학적인 국고를 탕진해도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이 쪼잔한(상대적으로) 갑질에 분노하는 현상을 믿을 수 없다”며, 전근대성을 지적한다.
작가는 이어 “한국이 갑에 의한, 갑을 위한, 갑의 나라라고 생각한다”며 “을로서의 자각과 자존감이 아직 미비하다”는 측면에서 그렇다고 말한다. “자력으로 거인을 처단하거나 하물며 오십미터 높이의 벽을 ‘제 손으로’쌓을 기회가 없었던 민족이다. ‘평등’이라는 이름의 벽돌 한 장이, ‘민주’라는 이름의 저 벽이 그래서 얼마나 사무치게 중요한지를 자꾸만 자꾸만 잊어 먹는 인간들이다”고 자조섞인 분노를 터트린다.
근대에 기여한 바가 없는 민족이라면 근대의 자각과 철학이라도 가져야 하는데 이번 사건의 현상은 전근대성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지난 세월 내내 우리가 돈, 돈, 돈, 돈 해온 결과라는 것.
작가의 결론은 우리가 가진 전근대성과의 싸움이다. 그는 “공란으로 비어있는 근대의 벽돌을 채우는 일이고, 권력을 분산하고 공정한 분배를 획득하는 생략된 역사적 절차를 복구하는 일이다. 인간의 사이즈는 저마다 다르다 해도 인권의 사이즈는 ‘다 같은’ 지점. 바로 그 곳이 나는 현대라고 생각한다” 며, ‘갑질 논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벽돌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는 에세이의 제목이 그런 벽돌쌓기로 ‘진격의 을질’로 바꾸어지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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