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
물론 석달 열흘 붉은 백일홍도 있겠죠. 하지만 영원히 피어있는 꽃은 없습니다. 권력도 이 같은 꽃과 무엇이 다를까 싶습니다. 어제의 패자가 오늘의 승자가 되고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될 수 있는 게 인생인 것처럼 말이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와 서임권 분쟁을 벌이던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강력한 지원자, 마틸다. 그의 영지인 카노사 성에서 카노사의 굴욕 사건이 일어났다. |
오늘 전해드릴 이야기는 전장을 달린 공주 ‘마틸다’ 이야기입니다. 하인리히 3세에게 엎드려 용서를 빈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切齒腐心)한 마틸다. 그의 바람이 결실을 맺었던 걸까요. 하인리히 4세가 마틸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정반대의 날이 오기까지 22년이면 충분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의 장남에게 폐위를 당하도록 물밑에서 미끼를 던진 인물도 바로 마틸다입니다.
자, 11세기 중반인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갑시다. 당시 영지를 가진 유럽의 영주라면 교황과 황제 사이에서 양쪽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했습니다. 이때는 교황의 권력이 더 강했던 시기이지만 때때로 황제의 명령이 곧 법이 되기도 했죠. 특히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 영지를 둔 영주들은 어느 편에 서야할지 매일같이 고민해야 했습니다. 황제의 영토와 교황의 세력권 사이에 영지가 위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오로지 교황만을 지지했던 배짱 두둑한 영주가 있었습니다. 하인리히 가문과 척을 진 오늘의 주인공, 마틸다입니다. 마틸다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인 토스카나 지역을 관할하는 영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영토 확장 전쟁에 나선 아버지가 암살을 당하면서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죠. 어머니는 광대한 영지를 탐내는 영주들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영주와 재혼합니다.
카노사 성에서 무릎을 꿇은 황제 하인리히 4세(가운데)와 마틸다(우측)의 모습. |
그런데 마틸다의 새 아버지는 꿈이 큰 야심가였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전쟁을 벌여 북이탈리아를 장악해 버리거든요. 기세를 몰아 그는 황제 하인리히 3세의 영토까지 공격해버립니다. 감히 황제의 땅을 건드리다니, 하인리히 3세는 열불이 납니다. 하인리히 3세는 황제인 자신의 허락없이 마틸다 어머니가 새 영주와 재혼한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차였거든요. 그는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진군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마틸다의 새 아버지는 가족을 버려두고 혼자 고향으로 도망가 버립니다.
매정한 새 아버지 때문에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마틸다의 어머니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결국 마틸다의 어머니는 누추한 복장으로 황제가 있는 궁정으로 찾아가 엎드려 빌며 용서를 구합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영지만 갖게 해주면 그 영지 안에서만 살겠다고 간청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황제는 그의 어머니를 체포해 감옥에 가둬버리죠.
이 때 마틸다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꾸짖으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비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더욱이 말입니다. 때마침 성에 두고 온 형제들이 “무참히 살해됐다”는 소식도 들어야만 했습니다. 하인리히 3세가 자신의 가족을 매정하게 살해했다고 믿은 마틸다, 그는 하인리히 가문에 대해 칼을 갈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인리히 3세가 세상을 떠납니다. 하인리히 4세가 그 뒤를 이었지만, 황제의 권위는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영주의 힘이 황제보다 더 셌기 때문입니다. 새 아버지가 다시 북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을 무력으로 응징하고 반란을 부추기기 위해 독일로 돌아가 하인리히 가문을 압박하던 시기도 이 때입니다. 그리고 새 아버지에게서 토스카나 지역의 영지와 함께 카노사 성을 물려받은 마틸다. 그는 교황의 강력한 지원자가 됩니다. 하인리히 가문에 대한 ‘은밀한 복수’를 시작하기 위해서 말이죠.
(*) 3일자 [바람난세계사]에선 하인리히 4세가 교황인 그레고리우스 7세에서 무릎을 꿇는 사건, 이른바 ‘카노사의 굴욕’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어머니가 하인리히 3세 앞에서 겪었던 치욕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던 마틸다. 그는 맨발에 누추한 옷을 입은 하인리히 4세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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