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번역원과 함께 읽는 승정원일기 <4>
1898년(고종 35) 7월 7일, 고종은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특채되어 총애를 받아온 한성부 판윤 김홍륙을 유배하라는 명을 내린다.교섭하는 자리에서 통역을 할 때 말 한 마디의 차이가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거늘, 저 교활한 자가 국가의 후한 은혜는 생각지 않고 동(東)을 가리켜 서(西)라 하고, 가(可)를 돌려 부(否)라 하여 두 나라가 서로 의심하게 만들었다. 또 공무를 빙자하여 온갖 짓을 다해 사리사욕을 채웠다. …… 전 한성부 판윤 김홍륙을 법부(法部)로 하여금 형률을 적용하여 유배형에 처하게 하라.
김홍륙은 전라남도 흑산도에 유배를 당하게 되자 원한을 품고 궁중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담당하는 전선사의 주사인 공홍식에게 아편을 주면서 고종이 먹는 음식에 탈 것을 요구하였다. 공홍식은 다시 은전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알고 지내던 김종화를 꾀었다. 김종화는 주방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들어가서 화로 위에서 끓고 있는 커피 다관에 아편을 넣었다. 그러나 다행히 고종이 이를 마시지 않아 화를 면했다. 이 사건으로 김홍륙, 공홍식, 김종화는 모반대역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같은 해 10월 29일에 최익현은 외국에서 만들어진 음식은 아무리 맛이 좋다고 해도 늘 드시는 것이 아닌 데다가 맛이 바르지 못하며, 또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것과 달라 위(胃) 기능에 해로우니, 한 젓가락이라도 입에 대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다. 그는 고종이 좋아하던 커피에 아편을 탔던 일을 떠올리며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이나 다과를 먹는 것까지도 경계할 것을 청한다. 커피 한 잔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는 위태로운 시기에 신하로서 무엇보다 신경 써야 할 일은 임금의 옥체를 보호하는 것이었으리라.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하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