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가 안 나가는 책들이 있다. 내용도 어렵고, 두껍기까지 하면 최악이다. 이른바 ‘베개’다. 정반대의 책도 있다. 술술 읽히는 책이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호킹지수(Hawking Index)’라고 있다. 조던 앨렌버그 미국 위스콘신대 수학과 교수가 만들었다. 쉽게 말해 그 책이 얼마나 ‘베개’인지를 알려주는 지수다.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애꿎게 이름을 차용(?) 당했다. 전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팔린 저서 ‘시간의 역사’ 때문이다. 이 책의 호킹지수는 6.6%다. 100페이지 책이라면 7페이지도 못 가 ‘베개’가 됐다는 얘기다. 더 심한 책도 있다. 최근의 화제작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2.4%, 힐러리 클린턴의 ‘힘든 선택들’은 1.9%였다.
반대 쪽에는 물론 소설이 있다. 도나 타트의 서스펜스 소설 ‘골드핀치’. 2013년 아마존 편집자들 선정 올해의 책이다. 호킹지수가 무려 98.5%다. 우리가 잘 아는 서스펜스 거장 스티븐 킹은 도나 타트를 “아주 훌륭한 작가”라고 극찬했다. 밤새워 읽는다는 스티븐 킹의 책들도 호킹지수 90%를 가뿐히 웃돌 것이다. 호킹지수를 뒤집으면 곧 ‘킹지수(King Index)’다. 얼마나 술술 읽히는지를 알려주는 지수.
이제 중2가 된 아들 녀석의 호킹지수(킹지수)는 당연히 만화책에서 높다. 다음이 소설, 수필 순이다. 역사책, 교과서는 정말 ‘힘든 선택들’이다. 이런 아이에게 ‘시간의 역사’는 ‘베개’다.
아이든 어른이든 ‘베개’를 읽으며 끙끙 댈 필요는 없다. 흠뻑 빠져 생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책’이 정답이다.
에피소드 하나. 얼마 전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책 ‘권력의 종말’(The End of Power)을 추천해 화제였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모이세스 나임의 말이 걸작이다. “내 책 같은 논픽션 말고, 소설을 읽어라. 소설은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이상적 입문서다” 난이도를 떠나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책을 읽으라는 조언일 것이다.
처칠, 에디슨, 아인슈타인.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학습부진아’, 그리고 ‘독서광’.
워렌 버핏,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이들도 공통점이 있다. ‘슈퍼리치’, 그리고 ‘독서광’.
워렌 버핏의 별명은 ‘책벌레’이고, 빌 게이츠는 “동네 도서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책과 초밥”이라고 했다.
한 지인의 말이다. “운동은 하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오래 살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인간다워지려는 사람’, ‘읽지 않으면서 알려고 하는 사람’도 똑같다.
‘지(智)ㆍ덕(德)ㆍ체(體)’에 대응하는 행동수칙이 곧 ‘독서ㆍ사색ㆍ운동’이다.
우리 국민의 1인당 연간 독서량은 2007년 12.1권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이다. 2013년은 9.2권(격년 조사라 가장 최근 자료)이다. 1996년이 9.1권이었으니, 17년 전으로 뒷걸음질쳤다. 각자 연간 세 권만 더 읽자. 달랑 세 권이지만, 독서 시계를 무려 17년 앞으로 돌리는 엄청난 일이다. 다음달 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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