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사에는 염 추기경을 비롯해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등 성직자와 마리아수녀회, 그리스도수도회 수도자들, 마리아수녀회 후원회장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세례명 실바노) 등이 참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월 가경자로 선포한 소 몬시뇰은 미국 워싱턴 출신으로 한국전쟁이후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1957년 6월 사제품을 받은 직후 한국전쟁 이후의 비참한 상황을 당시 루벵 가톨릭대에서 유학하던 부산교구 장요셉 신부(1912~1990)를 통해 전해 듣고 그해 겨울 한국 부산교구로 입적했다.
이후 그는 부산과 서울에 ‘소년의 집’과 ‘소녀의 집’을 설립하고, 고아들과 부랑아들, 가난한 가정의 10대 아이들을 돌봤다. 소 몬시뇰은 이들을 돌보는 마리아수녀회를 1964년 부산에서, 그리스도수도회는 1981년 5월 서울에서 창설했다. 1981년에는 서울시 요청으로 서울 시립 갱생원(현 은평의 마을)을 인수받아 위탁운영해오고 있다.
전쟁 고아들의 엄마, 아빠가 된 소 몬시뇰은 장성하여 결혼하는 졸업생들의 아버지로 이들의 결혼식 입장을 함께하기도 했다. 건강이 나빠져 미국으로 다시 건너갔을 때도 ‘한국 자선회’를 설립하고 모금활동을 벌이는 등 그의 도움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이후 그는 필리핀의 가톨릭 마닐라 대교구장 하이메 신 추기경의 초청으로 마닐라 대교구에 마리아수녀회 공동체를 개원하고 이곳의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며 헌신했다. 1989년부터는 근위축성경화증인 루게릭병을 앓았지만, 휠체어에 의존하면서도 기도와 가난한 이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1992년 필리핀 마닐라 소녀의 집에서 조용히 눈감았다.
그리스도의 이웃사랑을 실천한 그는 1983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으며, 84년과 92년 두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에 지명되기도 했다. 소 몬시뇰은 1975년 국민 훈장 ‘동백상’을 수상했다.
현재 그의 유지는 마리아수녀회가 이어가고 있다. 한국, 필리핀, 멕시코, 과테말라, 브라질, 온두라스에 설립된 ‘소년의 집’과 ‘소녀의 집’에선 2만5000여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며, 10만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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