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이정아 기자] 지난해 3월 시즌 2로 새롭게 시작한 네이버 웹툰 ‘가우스전자’.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결말이 궁금해지는 건 인지상정(人之常情)일 터. 주인공 이상식이 비밀 사내연애 끝에 차나래와 결혼하게 되면서 백마탄과 건강미의 러브전선에 관심이 쏠린다.
“이 둘도 결혼하겠죠?”
기자의 물음에 곽백수 작가(43)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로 답했다.
“나도 몰라요.”
통상 3주치 분량의 원고를 그려놓는데 아직 정해진 결말은 없단다. 작가는 그날그날의 에피소드를 가능한 재미있게 담아내는데 애쓰고 있다고.
직장인의 애환을 짚어내는 가우스전자는 평범한 직장생활에 대해 다룬다. 하지만 웹툰에 녹여낸 소소한 반전은 결코 가볍거나 평범하지 않다. 마지막 컷에는 허를 찌르는 해학이 담기고 묘한 여운에 답답했던 속은 뻥 뚫린다. 그래서 가우스전자는 힘든 직장인을 대신하는 입이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효자손이다.
꽃의 향연이 한창인 봄날 경기도 일산의 한 카페에서 가우스전자의 곽백수 작가를 만났다.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정장을 입는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하는 가우스전자를 그리는 작가는 정작 회색 후드티에 백팩을 메고 나타났다. 동네 아저씨 같은 편안한 느낌이었다.
‘가우스전자’의 곽백수 작가. dsun@/이정아 기자 |
▶ 현실적인, 더 현실적인… = 은근히 힘든 티 내면서 일하기, 결재서류는 가장 붐비는 시간에 내기, 일하는 시간 쪼개서 야근에 투자하기, 부장님 폭탄주에 소주 많이 타기, 회식 2차 장소는 시끄러운 곳으로 잡기 등등.
다국적 문어발 기업 가우스전자 마케팅3부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담백한 일상, 그 안에는 깨알같은 직장생활 팁들이 수두룩하다.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가우스전자가 명실상부한 ‘직장인 보고서’로 통하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지금의 가우스전자는 4년 전 작가가 구상한 것보다 더 현실적으로 변모했다.
“원래는 기괴한 직장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마냥 엉뚱한 소재를 다루거나 노골적인 풍자를 담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만화가 점점 순해졌어요.”
시즌 2에서 신입사원 사교육이 등장하게 된 것만 봐도 그렇다. 학원 선생님에게 직장생활의 정석을 배우는 사교육의 모습은 자기 의지 없이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를 표상한다.
“우리 사회는 공부병에 걸려 있어요. 얼마나 성장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1등인지 순위를 매기고 있죠. 낡은 방식의 경쟁 시스템 때문에 자식도 괴롭고 부모도 괴로운 겁니다.”
이런 면에서 작가가 가장 부각하고 싶은 캐릭터는 바로 이상식이다. 어리바리하고 눈치가 없는 탓에 상식은 맨날 상사에게 혼나기 일쑤다. 그러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는 상식이가 5년 뒤에는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작가는 단언한다.
“힘들 때 같이 울어주고 기쁠 때 같이 축하해주는 착한 상식이가 ‘상식적’이죠. 상식이는 천천히 한 걸음씩 자기 방식대로 성장하고 있어요.”
네이버 웹툰 ‘가우스전자’ 시즌 2 캡처. |
▶ ‘캐릭터’가 중심인 웹툰= 작가는 군대에서 밤하늘을 보며 보초를 서다가 만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1997년 단편만화 ‘투맨코미디-외계인편’으로 만화계에 첫발을 들인다. 이후 2003년부터 연재한 만화 ‘트라우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스타작가로 부상했고 이후 작가는 캐릭터에 집중한 차기작을 그리고 싶었다.
평범한 회사원 이상식, 대기업 총수의 아들 백마탄, 눈치의 달인 고득점, 존재감 제로(0) 나무명, 어떤 일이든 능구렁이처럼 넘기는 성형미 등등. 가우스전자 등장인물은 그렇게 태어났다. 다만 직장생활 경험이 전혀 없는 작가가 그리는 웹툰의 배경이 ‘사무실’이라는 게 아이러니다. 주 5일 연재하면서 새로운 직장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힘들 법도 한데 오랜 내공을 쌓아온 작가에게선 여유가 묻어났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 서핑으로 취재를 해요. 직장 다니는 후배들한테 이야기도 많이 듣고요. 밥만 먹고 하는 게 이 일이다 보니까 이젠 대충 이야기만 들어도 무슨 일이 있는지 짐작이 가요.”
그래서 그의 진짜 고민은 다른 지점에 있다. 어장관리녀 모해영이 유독 독자들의 미움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 작가는 “모해영 분량이 점점 줄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 건강미만 너무 매력적으로 그리는 게 아니냐고 묻자 작가는 “청순하고 착하고 가슴이 큰 드림(Dream)녀”라며 “상대적으로 무색무취한 캐릭터이다 보니 색을 넣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만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미다.
네이버 웹툰 ‘가우스전자’ 시즌 1 캡처. |
▶ 꿈 많은 40대 아빠= 작가는 지난해 시즌 2 연재를 앞두고 두 달간의 휴식기간 동안 발명품 특허를 내고 동화책도 그렸다. 죽음을 주제로 한 동화는 이미 완성 단계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그의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언젠가 연기에도 도전하고 싶다.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작가의 삶 자체가 가우스전자에서 하고 싶은 작가의 말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직장은 안정, 사업은 모험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거기에서 오류가 오는 것 같아요. 어차피 인생은 모험이에요. 놀기엔 인생은 짧지만 무언가를 성취하기엔 인생은 길어요. 그러니까 인생에 몸을 던지세요.”
▶ 에필로그= 작가가 만약 회사원이었다면 어떤 캐릭터와 가장 닮았을까. 1초의 고민도 없이 그가 “최선수”라고 답한다.
바람기 있는 인물로 묘사되곤 하지만 최선수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고 자신만의 가치관이 분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반전 매력을 뽐내며 각 에피소드를 매듭짓는 최선수가 그동안 작가를 대변하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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