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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절묘한 대우조선 연환계...참패한 국민연금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손자병법 36계의 백미는 ‘연환계(連環計)’다. 미인계(美人計)·공성계(空城計)·반간계(反間計)·고육계(苦肉計) 등과 함께 패전계(敗戰計)에 속한다. 패색 짙은 싸움에서 기사회생하여 승리하는 계책이다. 설명은 이렇다.

“적의 장수와 병사들이 많을 때는 정면으로 대적할 수 없다. 적으로 하여금 스스로 묶어 놓게 함으로써 그 기세를 죽여야 한다”

정부와 국책은행 등이 대우조선 최대 사채권자인 국민연금을 상대로 펼친 ‘연환계’가 보기 좋게 성공했다. 의도한 ‘틀(frame)’에 국민연금을 가둬 항복문서를 받아냈다.

17일 오전 서울 중구 다동 대우조선해양에서 열린 사채권자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최대 사채권자인 국민연금은 이날 새벽 정부와 국책은행 등이 마련한 채무재조정안에 동의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3월23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채무재조정안을 발표했을 때만해도 패색 짙은 싸움으로 보였다. 하지만 불과 3주만에 전세는 역전됐다.

첫 포문은 공성계다. 임 위원장은 대우조선을 지원하지 않으면 법정관리로 갈 수 있고, 최대 60조원의 경제적 피해가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법정관리’의 문을 열면 ‘60조’의 책임을 고스란히 질 수 있다는 ‘공포(恐怖)’를 심었다. 부도로 이어질 채권만기를 불과 한달 여 앞둔 시점이다. ‘검증’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기습이었다.

두번째는 고육계다. 대우조선의 도덕적 해이와 관리감독부실, 그리고 회계부정 등에 대한 1차 책임은 대주주와 감독기관인 금융위 몫이다. 이들은 국민적 동의도 없이 2015년 말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통해 4조2000억원을 지원했지만 분식회계로 난 구멍을 메우는 정도에 그쳤고, 구조조정에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산은 등은 추기지원이 마치 국가경제를 위해 큰 결단을 내린 듯한 태도를 취했다. 이들의 지원금 재원은 ‘국민재산’이다.

마무리는 반간계다. 국민 노후 자금을 책임진 국민연금이 국민부담을 이유로 채무조정안 동의를 꺼려하자 마치 경제파탄 위험을 외면한 채 제 이익만 챙기려 한다는 논리를 암암리에 펼쳤다. 정부와 국책은행을 향하던 여론의 화살 촉은 국민연금에게 절묘하게 돌아갔다. 일정을 독점한 ‘시간압박’으로 정부와 국책은행의 ‘원죄’를 따질 틈을 완벽히 차단했다.

승자인 정부와 국책은행은 많은 것을 얻었다. 앞으로 대우조선 회생여부의 책임은 ‘서별관회의’에서 이번 채무재조정안의 성공여부로 바뀌었다. 그나마도 ‘실행책임’은 다음 정부 몫이다. 아울러 두 국책은행은 가장 큰 부담이던 선수급환급보증(RG) 위험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반면 국민연금은 분식회계에 속아서 투자한 돈의 최소 절반이 허공으로 사라지게 됐고, ‘대마불사’ 논리 앞에 무릎 꿇는 첫 사례를 남기게 됐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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