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재ㆍ부품 산업 지나친 일본 의존 산업구조 경계심 상실도 문제로 지적
- 재계 양국 관계 악화에 민간외교 채널 가동했지만 끝내 파국
[헤럴드경제=재계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일본의 기습적인 핵심 소재들의 수출 규제 후폭풍이 재계 전반을 강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낳은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의 여파를 견뎌내기도 버거운 국내 기업들은 우방으로 인식되던 일본 마저 경제 보복에 나서자 크게 낙담하는 분위기다. 기업인들 내부에서는 특히 갈등의 불씨를 키워온 정부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보다 나은 기업 경영 환경을 조성해줘야 할 정부가 도리어 민간 기업의 영역에 과도하게 개입해 양국간 불필요한 갈등의 불씨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과 여러 문제가 남겨져 있지만 철저하게 정경분리로 갔어야 했다"라며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한국 정부가 이 원칙을 깬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한 게 아니라, 대법원을 통해 일본 기업에게 직접 펀치를 날렸던 것이고 이건 큰 실수로 봐야한다"며 "기업의 재산권 문제를 침해하는 것은 글로벌 기준에도 맞지 않는 악수 중의 악수였다"고 비판했다.
재계는 그동안 일본과의 관계 악화가 경제 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크게 우려해 왔다. 주요 경제단체장들이 민간 외교 채널을 가동하며 양국간 신뢰 회복에 상당한 공을 들여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일본 경제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허창수 회장은 지난 3월 연임 이후 4월 한국 경제계를 대표해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일본 자민당 간사장을 예방하며 악화된 한일 관계의 복원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허 회장은 "올해 11월로 예정된 '한일재계회의'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지난달 '기업에서 바라본 한일관계 토론회'에 양국 기업인들을 초청해 "최근 들어 한국과 일본 경제협력 관계에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며 "양국 경제인들과 기업들이 관계 회복에 기여해 나가야 할 때"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양국 경제계 토론회와 대면접촉 등 이른바 스킨십 외에 기업인들이 딱히 강구할 대안이 없다는 점은 근본적인 한계로 지적돼 왔다. 그리고 급기야 경제보복으로 이어지기에 이르렀다.
재계 관계자는 "일단 정치문제라서 기업이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일본이 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압박용으로만 쓰는 건지 자국 기업 피해를 감수하고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수출규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소재나 부품 측면에서 일본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산업구조에 대한 경계감 없이 정부가 이념과 명분에 함몰돼 강경하게 대응한 점도 기업인들 사이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실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언주 의원은 "우리나라의 세계시장에 대한 부품소재 무역수지는 2017년 1145억달러로 2016년 998억달러에 비해 147억달러가 증가했고, 특히 2017년 중국, 미국에 대한 부품소재 무역수지 또한 각각 399억달러, 97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에 반해 대일 무역수지는 적자가 지속되고 있으며, 2016년 146억달러이던 것이 2017년 160억달러로 14억 달러가 증가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일무역수지에서도 지난해 반도체 호황으로 무역수지가 700억달러 흑자를 달성했을 때도 대일 무역적자는 240억달러에 달했다. 올해도 지난 5월까지 84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상무)는 "그동안 강제징용 대법 판결 이후 일본은 군불을 떼왔다"며 "우리나라 산업구조상 일본에 핵심부품 수입이 많아 타격이 불가피하다. 최악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민간 경제 외교 채널과 정부 협상 창구를 제대로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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