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 우위’ ‘업무 적정범위’ 등 애매한 표현
- 법해석 모호 고발 남발 우려ㆍ업무효율성 저하도
- 공정거래법ㆍ상법ㆍ산안법 등 기업 옥죄는 법안 줄줄이
- “규제 혁파는 안보이고 쌓이기만…경영활동 제약” 한숨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16일 본격 시행되면서 재계에서는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사건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법안이 하나씩 나옵니다. 현행 제도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 선례도 없는 법안이 계속 나와 일일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해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16일부터 본격 시행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재계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비단 직장내 괴롭힘금지법 뿐만 아니라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이어 공정거래법과 상법, 산업안전보건법, 유통산업발전법, 화학물질관리법 등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법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재계는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몰렸다.
특히 직장내 괴롭힘금지법은 불명확한 판단 기준과 직급별 입장 차이 등으로 직장내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법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내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개인사 소문내기 ▷음주·흡연·회식 강요 ▷욕설·폭언 등 16가지 행위가 포함된다.
괴롭힘이 사실로 확인되면 가해자 징계를 포함한 조치가 의무화된다.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불이익한 처우를 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직장내 괴롭힘금지법은 그동안 법조항이 없어 처벌하기 어려웠던 폭언·모욕·따돌림·명예훼손 등을 신고·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애매한 표현으로 신고가 남발할 수 있고 업무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매뉴얼을 만들긴 했지만 그 외의 상황에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며 “부하 직원은 괴롭힘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상사는 그런 의도 없이 정당한 업무지시였다고 하면 판단 잣대를 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용 법무법인 바른 노무사는 “직장내 괴롭힘 요건 중에 직급뿐만 아니라 ‘관계 우위’가 있는데 지위의 우위는 명백하지만 관계의 우위는 해석이 애매할 수 있다”며 “집단 부하직원이 팀장을 괴롭히는 경우 등 다수와 소수, 여성과 남성 ‘관계의 우위’에 대한 모호한 법 해석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직장내 괴롭힘을 해고나 징계 사유로 추가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상 간단히 사규를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 불이익변경(근로자에 불리한 규정 변경)으로 전사동의를 받게 돼 있다”며 “이 때문에 연말에 한번 몰아서 하는 불이익변경을 또 해야 하느냐는 불만 섞인 기업 문의가 많다”고 덧붙였다.
대형 로펌의 노동 전문 변호사는 “직장내 성희롱만 놓고 보더라도 어디까지 성적 수치심을 준 것으로 봐야하는지 상당히 모호한데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근무 중에 발생하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도록 하고 있다”며 “업무 적정 범위 등 법원의 판례가 축적되고 사회적으로 정착되기 전까지 혼란이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법, 상법,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등 기업 경영활동을 옥죄는 법안이 산재해 재계의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
이처럼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과잉 입법 논란은 문재인 정부 들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작년 7월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과 이번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뿐 아니라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비롯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 구체적 기준 없이 작업중지 명령이 남발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시행령 개정안 등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상법 개정안은 해외 투기자본에 의한 의한 경영권 위협을 증대시킨다”며 “특히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시가총액 30대 기업 중 7개 기업의 이사회가 해외 자본에 장악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산안법에 대해서는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4단체가 경영계 의견을 공동으로 고용노동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 경제 4단체는 “작업중지 명령의 실체적·절차적 세부 요건이 규정돼 있지 않아 작업중지 명령이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문제점을 해소하지 못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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