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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파구 없는 한국 경제, 초조한 기업들
- 대통령·당대표 회동 원론수준 그쳐…총수들만 일본 급파 ‘발동동’
- 하반기 성장률 지속하락속 각종 규제 가로막혀 기업만 좌불안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해 잇달아 일본 출장에 나섰다.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국내 기업들의 초조함이 극에 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들이 지난 18일 일본 수출규제 관련 청와대 회동을 가졌지만 합의문 도출 없이 ‘일본은 경제보복을 즉시 철회하고 외교로 나오라’라는 원론적인 ‘레토릭(수사)’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이를 바라보는 재계는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다. 무력감에도 사로잡히고 있다.

한국 경제의 ‘대들보’인 반도체 산업이 볼모로 잡혀있는데도 구체적인 해법은 오리무중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다소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위기감을 느끼고 협치에 나선 것을 환영하다”면서도 “정치권이 재계 목소리를 경청해 이번 사태에 실질적인 해법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실효적인 해결 모색이 아닌 보여주기식인 듯해 매우 안타깝다”며 “기업의 체력은 점점 약해지는데 오래된 정치구호는 결코 도움이 안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사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룹 총수들이 잇달라 일본행에 나서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18일 일본을 긴급 방문했다.

공식적으로는 대한양궁협회장 자격으로 ‘도쿄올림픽 테스트 행사(프레올림픽)’ 참석을 위한 것이지만,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확대 시 전기·수소차 등 현대차그룹이 주력하고 있는 미래차 산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적인 행보로 풀이된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일본 정부의 소재 수출을 강화한 직후인 지난 7일 도쿄로 날아가 예상보다 긴 5박6일을 체류하며 현지 거래선과 관계자들을 만나 반도체 소재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귀국 다음날인 13일에는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TV 전(全) 제품의 ‘컨틴전시 플랜(비상경영 계획)’을 지시했다.

지난 15일 귀국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국내 기업인 중 일본을 가장 잘 아는 인물로 꼽힌다. 이에 현지를 방문해 상황을 살피고 일본 재계 및 금융계 인사들에게 우려를 전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정치외교적인 문제로 촉발된 만큼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것엔 분명한 한계가 있다”면서도 “총수들의 일본행은 고육지책일 뿐, 외교적인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각 사별로 자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장기화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하반기 성장률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우려를 키운다.

한국은행은 지난 18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월 내놓은 2.5%보다 0.3%포인트나 낮춘 2.2%로 하향조정했다. 수출과 투자 부진으로 경기가 악화하는 가운데 일본의 수출 규제까지 겹쳐 2% 초반의 저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경제가 부진의 늪에 빠져들고 있지만 각종 규제에 묶인 기업활동은 어느 때보다 위축돼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비롯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 구체적 기준 없이 작업중지 명령이 남발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정안 등이 줄줄이 예고돼 있는 반면, 4차 산업혁명 발전을 위한 벤처·신사업 관련 규제 혁파는 한치 앞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팀장(상무)은 “문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이 일본에 ‘외교로 나오라’며 해결을 촉구했지만, 일본 정부가 그동안 요구한 것이 외교적 해결이다. 우리 정부가 원하는 외교적 형식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면서 “우리 기업들은 하루가 시급하다. 외교적 협의의 장을 서둘러 시작해 장기화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태는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부정적인 여론이 고조되고 있어 미래 세대에 큰 짐을 줄 수 있다”며 “현재 이슈 해결과 함께 미래를 보는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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