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업적 정책에 반일감정까지 겹쳐 ‘노심초사’
- 수출도 수입도 제동걸린 이중苦…광복절 메시지 주목
- 전문가들 “日배제, 협상전략상 불가피한 상응조치 불구 실효성 의문”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한국 정부가 지난 12일 일본을 화이트국에서 배제하는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자 재계는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다.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한일관계가 우리 정부의 맞대응으로 불확실성이 다시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데다 반일감정까지 격앙되면서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재계는 피해 최소화에 총력을 쏟으면서 광복절 정부의 메시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의 조치에 대해 “협상전략상 불가피한 상응조치로 볼 수 있지만 실효성이 의문”이라며 “이마저도 일본 정부의 시나리오에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기업들, 수출도 수입도 제동 ‘이중苦’= 우리 기업은 한일 양방의 화이트국 제외 조치로 수출도 수입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에 몰렸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수입도, 수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중고에 처한 것”이라며 “기업은 일단 피해가 나면 되돌릴 수 없다. 이제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도광양회(韬光养晦· 임기응변보다 재능과 명성을 숨기고 때를 기다린다)하는 자세를 보였으면 좋겠다”고 촉구했다.
거세지는 반일감정 역시 기업들을 바짝 긴장하게 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자고 일어나면 우리 회사 제품이 불매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나 확인한다”며 “반일감정이 격앙되면서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커뮤니케이션에 각별히 조심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일본 화이트국 배제로 수출 차질은 물론 행정처리를 잘 못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이라면 리스크 관리를 잘 할 수 있겠지만, 인적자원이 충분치 않은 중소기업은 사정이 다르다”며 “이번 일본 백색국가 제외로 수출할 때는 일일이 확인하고 전략물자관리원에 신고해 허가를 받아야 되는데, 전략물자 지정 여부를 모르고 수출했다 적발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수출 금액의 3배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고 우려했다.
▶협상전략상 불가피 vs 실효성 미지수=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조치에 대해 협상전략상 불가피한 조치라면서도 강대강 전략은 국민정서를 자극해 봉합을 힘들게 한다고 우려했다.
허윤 서강대국제대학원 교수(국제통상)는 일본 화이트국 제외에 대해 “우리 정부도 규정을 만들어놓고 향후 일본 조치를 지켜보면서 필요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라며 “다자적인 접근에서 양자적으로 노선을 바꾼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 교수는 “그동안 우리 정부는 WTO 제소 검토 등 다자주의적 접근을 취해왔지만 이는 시간이 걸리는데다 일본도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면 WTO에서 우위를 보장받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 한계를 정부가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허 교수는 “한국의 일본 화이트국 배제는 일본 정부의 시나리오에 이미 있는 내용일 수 있다”며 “이번 조치가 한일간 무역구조상의 비대칭성으로 일본의 감정만 자극하고 일본의 조치에 실질적인 견제가 되지 못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산업혁신팀장도 “이번 조치는 일본처럼 개별허가 리스트는 밝히지 않고 화이트국에서만 일본을 제외한 것이지만 일본내 반발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이번 맞대응이 일본에 추가보복 명분을 제공할 수 있고, 한국이 피해자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는 국제 여론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허 교수는 나아가 “우리 정부가 향후 일본의 조치를 지켜보면서 한국 기업에 실질적인 피해가 가면 대응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이 우리 기업 이익에 더 부합하고 사태를 안정적인 진정국면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었을지 아쉬움이 든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이번 조치는 등가적 상응조치로 향후 협상전략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이런 조치가 있어야 향후 협상에서 패를 물리든지 상향시키든지 하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갈등은 양국 모두가 피해를 보는 마이너스성 게임으로, 양국 모두 최대 요구를 내걸고 있어 실현이 불가능하다”며 “결국엔 양국이 피해를 볼 만큼 본 후 일정 시점에서 정치적 타협을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번 갈등이 내년 총선까지 장기화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앞서고 있다”며 “아베 총리에게도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철회하는것은 정치적 죽음을 의미하고, 한국에서도 내년 총선과 연결돼 있어 선거결과가 나올 때까지 오래 갈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주저앉으면 다음 수를 둘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해 오히려 경제적인 타격이 더 클 수 있다”며 “단기적 차원에서 피해나 이익감소는 한국이 더 클 수 있지만, 서로 피해를 최소화해가면서 우리의 약점을 보완하는 과정을 병행하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분명한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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