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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할머니들 울린...배우 한지민의 ‘슬프고 아름다운 낭독’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서
유족들 마음 적은 편지글 대독 감동
영화 ‘김복동’ 내레이션 참여 등
위안부 할머니들과 인연 깊어
배우 한지민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유족들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독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조현아 기자] 광복절을 앞두고 아름다운 배우가 진심을 담아 고운 말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제74회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정부 기념식에서 배우 한지민이 위안부 피해자의 유족들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이날 한지민이 읽은 편지는 ‘위안부였던 나의 사랑하는 엄마에게’라는 제목으로, 여성가족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유족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편지글로 엮은 뒤 유족들의 재확인을 거쳐 대독자로 한지민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영화 ‘김복동’의 내레이션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다양한 위안부와 관련된 활동을 했던 한지민은 이날 차분한 목소리로 덤덤히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편지는 ‘열일곱에 다친 사람들을 간호하러 간 걸로 알던 엄마가 실제는 군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간 것임을 알게 된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 모진 고생 끝에 돌아온 엄마가 영어와 일어를 할 줄 알면서도 밖에 나가선 왜 한마디도 안 했는지를 알게 된 자녀들의 고백이 이어졌다.

그리고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 앞에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애써 외면하려 했던 미안함을 절절히 이야기했다.

한지민은 낭독 중간 “아무것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애써 외면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모른 체하고 싶었습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옵니다”라는 대목에서 감정이 차오른 듯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 눈물을 참는 모습도 보였다.

이는 듣는 이들의 마음까지 울려 곳곳에서 눈물을 닦는 모습도 보였다.

이어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하늘로 떠난 엄마에게 “모진 시간 잘 버티셨다”며 다시는 이런 아픔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어가겠다는 유족들의 다짐이 이어졌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배우 한지민과 유족들이 전한 아름다운 위로가 꽃다웠던, 그러나 아팠던 우리 엄마들의 못 다한 소망을 포근히 감싸, 이뤄지기를 바라본다.

영화 ‘김복동’ 개봉을 알리고 있는 한지민. [한짐니 인스타그램]

joy@heraldcorpo.com

※한지민이 낭독한 편지글 ‘위안부였던, 사랑하는 엄마에게’ 전문.

어린 시절, 또래의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평양이 고향이신데, 전쟁 때 다친 군인들을 치료하는 간호사였다고, 우리 엄마는 참 훌륭한 분이라고 자랑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잠결에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엄마가 일본군 위안부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뭔지 무슨 일을 겪으신 건지 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1942년. 그러니까 엄마 나이 열일곱.

전쟁 때 다친 사람들을 간호하러 가신 게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신 거구나…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다친 어깨와 허리 때문에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 하시는 엄마를 보면서도 무엇을 하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으신 건지 엄마한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 무섭기만 했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습니다.

혹시라도 내 주변의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일본말도 잘 하시고 가끔은 영어를 쓰시기도 하셨지만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 얘기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며 제게도 항상 신신당부를 하시곤 했었죠./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애써 외면했어요.

제가 알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모른 체 하고 싶었습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가슴이 아파옵니다./

엄마.

엄마가 처음으로 수요 집회에 나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처음엔 어디 가시는지조차 몰랐던 제가 그 뒤,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 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

“다시는 나 같은 아픔이 없어야 해.”/

엄마는 강한 분이셨어요.

그러나 엄마는 그렇게 바라던 진정한 사죄도, 어린 시절을 보상도 받지 못하시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과의 싸움이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

끝내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품고 가신 우리 엄마. 모진 시간 잘 버텨내셨습니다./

이런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반드시 엄마의 못 다한 소망을 이루어내겠습니다.

이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안해지시길 소망합니다./

나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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