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척(盜 )은 중국 역사에서 손 꼽히는 대도(大盜)다. 힘도 세지만, 두뇌도 명석해 당시 공권력으로도 어찌 못할 정도였다. 어느 날 도척의 부하가 두목에게 묻는다.
“도적질에도 도(道)가 있습니까”
도척이 답한다.
“당연히 도둑에게도 도리가 있다. 먼저 털 집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성(聖)이다. 또 훔칠 것의 가부(可否)를 아는 것은 지(知), 남보다 먼저 도둑질을 시작하는 것이 용(勇)이고, 나올 때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은 의(義)다. 끝으로 도둑질한 물품을 골고루 나눠 갖는 게 인(仁)이다”
장자(莊子) ‘거협( )’편에 나오는 얘기다. 정치나 병법은 물론 경영에도 접목할 만 하다. 최근 유럽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은행들의 자산관리 영업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 여기에 대입목해보자.
고객의 니즈(needs)와 그에 따른 적절한 자산 배분처를 살피는 게 성(聖)이다. 기대수익과 감수할 위험을 분석해 투자여부를 판단하는 게 지(知)이며, 남보다 앞서 행동에 나서는 게 용(勇)이고, 투자회수(exit)이 끝날 때까지 자산상태를 살펴 고객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게 의(義)다. 마지막으로 고객과 함께 성과를 합리적으로 공유하는 게 인(仁)이 될 수 있다.
은행은 가장 많은 고객과 돈이 몰려 있는 곳이다. 자산관리 전선(戰線)은 넓은 데 고객의 요구는 편차가 크다. 은행 판매채널을 노리는 상품들은 많다. 중구난방의 고객 요구보다 상품 공급사의 ‘달콤한 유혹’에 흔들릴 소지가 크다. 성(聖)이나 지(知)가 제대로 발휘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다양한 자산군과 전략을 과감히 활용해야 하는데, 프라이빗뱅커(PB) 대부분이 실제 돈을 굴려 본 경험 없다. 용(勇)을 가지라고 주문하기 어렵다.
은행은 판매시점에서 수수료로 수익이 확정되는데, 고객 성과는 만기 또는 중도상환까지 미확정이다. 중도환매는 징벌적 수수료 때문에 아주 드물다. 영업하는 입장에서 손실이 확정되는 중도환매를 권하기란, 99.9% 확신을 갖기 전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한번 팔면 끝까지 간다. 제대로 고르지 못하면 끝까지 잘못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의(義)롭지도 않을 뿐더러, 인(仁)을 따질 구조도 아니다.
거협이란 ‘상자를 연다’는 뜻이다. 장자는 상자를 아무리 단단히 채워도 통째로 가져가는 큰 도둑에는 소용이 없다고 지적한다. 금융상품을 판매해야만 수수료를 취하는 현재의 자산관리 방식으로는 그 어떤 변화 노력도 결국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저성장 시대 합리적 자산관리는 경제시스템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로운 지식산업이기도 하다. 은행 차원을 넘어 제도 차원에서 판을 새롭게 짤 정도의 큰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