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코로나19가 촉발한 경제위기에서 가장 많이 가격이 하락한 자산이 원유다. 수요급감 우려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간 원유전쟁까지 겹치며 지난해 고점 대비 거의 1/4토막(두바이유 현물)이 났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 만큼이나 원유시장의 반등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개인투자자들도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통해 접근이 가능해서다.
해외 에너지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단기간에 국제유가가 크게 반등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코로나19로 에너지 소비가 줄면서 올해 원유소비량도 전년대비 20% 이상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루 2000만 배렬 가량인데, 오일쇼크 때보다도 큰 감소폭이라고 한다.
수요가 줄면 공급도 줄여야 가격하락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내달부터 공급은 크게 늘어날 예정이다. 감산 협상이 결렬된 사우디와 러시아가 원유공급을 오히려 늘리겠다고 나서면서다. 관건은 두 나라가 과연 다시 감산 협상을 벌일 수 있느냐인데, 단기간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코로나19 발발 전인 올 1월 생산량을 보면 러시아가 사우디를 앞섰다. 사우디가 이끄는 석유수출국개발기구(OPEC)은 감축 목표를 초과달성했지만, 러시아가 이끄는 비 OPEC 국가들은 거의 전부가 목표에 미달했다. 사우디 등 OPEC 입장에서는 약이 오를 수 밖에 없다. 사우디 왕가에서 처음으로 석유에 대한 직접 통제권을 행사한 빈 살만 왕세자 입장에서는 체면이 구겨진 셈이다. 그런데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내달 장기집권을 위한 헌법개정을 앞두고 있어 정치적 위상 강화를 위해 당분간 강수를 둘 확률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미국은 이미 사우디와 러시아의 공적이다. 2014년 이후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로 사우디와 러시아는 고유가 시대를 마감해야만 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경제재제까지 받고 있다.
미국 셰일가스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약 40달러 다. 셰일가스 업체들이 줄도산 하면 미국 경제 전체에 타격이 미칠 수 있다. 반면 사우디의 원유생산 단가는 배럴당 3달러 이하로 세계 최저다. 배럴당 30 달러는 ‘편안하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도 최근 수 년간 오일달러로 5770억 달러를 비축, 최소 5년 이상 초 저유가를 버틸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모양새로만 보면 사우디와 러시아가 이 참에 미국의 셰일가스 업계를 재기불능으로 만들려는 태세다.
또다른 변수도 있다. 세계적인 반 화석연료화에 대한 견제다. 친환경 에너지가 보편화되면 원유의 설자리가 좁아진다. 당장 생산한 원유의 가치 뿐 아니라 아직 매장된 원유의 잠재 가치도 위협한다. 원유생산국 입장에서 친환경 에너지는 미래가 사라질 수 있는 위협이다. 이번 기회에 초저유가로 친환경 에너지 경제적 매력을 떨어뜨려 원유 중심의 에너지 생태계를 좀 더 연장시킬 심산일 수 있다.
문제는 사우디와 러시아 외의 산유국들이다. 초저유가가 지속될 수록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경제위기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의 손익단가는 배럴당 50달러선, 재정균형 단가는 배럴당 80달러 선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국 적정 시점에 두 나라가 다시 감산 협상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감산이 이뤄진다하더라도 유가 반등은 미국 셰일가스의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40달러 선 아래에서 제한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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