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래가격이 시세보다 낮은 ‘이상 현상’
거래없고, 매물 줄면 시세 변화 미미
가끔 한 건 거래되는 실거래가 변동이 오히려 더 커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서울 구로구 개봉동 ‘현대아파트’ 84㎡(이하 전용면적)는 지난 11일 7억7000만원(19층)에 거래됐다. 이 단지 같은 크기 중 역대 가장 높은 ‘신고가’다. 이 아파트의 직전 최고가는 7월 계약한 6억6800만원(4층)이다. 3달도 안돼 실거래가가 1억원 이상 껑충 뛰었다.
실거래가가 이렇게 폭등한 사이 한국감정원과 KB국민은행이 작성하는 ‘시세’ 변화는 어떨까. 한국감정원 기준, 이 아파트 시세는 10월 기준 5억7000만원(하한가)에서 6억8000만원(상한가)이다. 하한가는 단지 내 같은 크기 가운데 저층 등 싸게 나온 매물의 시세고, 상한가는 선호도가 높은 로얄층, ‘올 수리’ 아파트 등의 시세를 의미한다. 이 아파트 시세는 7월 기준 하한가는 5억5000만원이었고 상한가는 6억3000만원이었다. 시세 기준으로는 2000만~5000만원 정도 오른 셈이다.
KB국민은행이 집계한 시세도 감정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달 기준 6억원(하한가)에서 6억8000만원(상한가)이다. 7월엔 5억5000만원에서 6억1250만원 사이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건 ‘실거래가’가 시세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시세 상한가 6억8000만원 보다도 실거래가가 1억원 가까이 높다. 매물수, 거래량 등을 고려하는 시세 상승폭은 미미한데 실거래가가 신고가를 경신하면서 폭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실거래가는 시세 보다 낮게 형성된다. 집주인이 매물을 내놓을 때는 실거래가를 참고해 좀 더 높은 값으로 중개업소에 내놓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값)를 높여 놔야 나중에 매수자와 협상에서도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주인이 부르는 호가가 반영되는 시세는 실거래가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 등에서 한국감정원과 KB국민은행이 발표하는 시세 정보가 집주인 희망사항이 반영된 호가 중심이어서 집값 상승폭이 큰 것처럼 나타난다고 비판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시장 상황은 다르다. 실거래가가 시세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는 경우가 서울에선 흔히 발견된다.
서초구 방배동 ‘방배2차현대홈타운’ 59.86㎡는 이달 5일 14억원(15층)에 거래됐다. 이 거래가 역시 이 단지 같은 크기 중 역대 가장 비싼 신고가다. 그런데 한국감정원이 작성한 이 아파트 시세는 11억6000만원에서 13억7000만원이다. KB국민은행이 집계한 시세는 11억5000만원에서 13억5000만원으로 이보다 더 낮다.
마포구 상암동 ‘상암월드컵파크2단지’ 59㎡는 지난 8일, 8억8300만원(12층)에 거래돼 역시 기존 신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그런데 이 아파트 시세는 감정원 기준 7억8000만원에서 8억7000만원, KB국민은행 기준 8억원에서 8억7350만원이다.
시세표가 붙어 있는 강남구 송파구 중개업소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헤럴드경제DB] |
알려졌듯이 한국감정원은 소속 조사원이 실거래가, 매물동향, 거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거래 가능한 가격으로 시세를 작성한다. KB국민은행은 회원 중개업소 관계자들이 네트워크에 올려놓은 매물 가격을 근거로 시세를 만든다.
호가가 반영된 시세가 실거래가보다 낮게 형성되는 상황이 지금 서울 및 수도권 인기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걸까? 정부 규제 때문이라고 현장에선 보고 있다. 지금은 집주인과 매수 희망자간의 ‘눈치보기’ 장세라고 한다. 집주인은 각종 규제에도 싸게 팔 생각이 없다. 주택 수요가 많아 굳이 싸게 내놓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장에 매물이 줄고, 거래가 많지 않으니 시세 변동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기존 호가가 통계에 그대로 잡히는 경우가 많다. 혹은 호가가 뛰어도 시세 반영이 늦다. 이 와중에 인기지역에서 희소성이 높아진 매물이 띄엄띄엄 하나씩 ‘신고가’로 거래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실거래가가 시세보다 높아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앞서 몇 단지 사례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실거래가 기준으론 요즘 서울 아파트 단지 중 서너 달 사이 10% 이상 뛴 곳이 수두룩하다. 정부 공식 통계인 한국감정원 기준으로 올해 1~9월 서울 아파트 누적 변동률은 3%도 안 된다.
실거래가 변동률이 집주인 호가 기반 시세 변동률을 훨씬 앞서는 이상한 상황이 지금 주택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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