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본설계에 따라 달라지는 주택 통계
시장 상황 따라 집주인 호가가 객관적일수도
실거래가도 시장 상황 파악하는 데는 한계
부동산 통계는 참고용...“발품 팔아 스스로 판단해야”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몇 년 전부터 정부 부동산 공식 통계를 책임지는 한국감정원 국정감사 때만 되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슈가 있다. 한국감정원이 주간과 월간 단위로 내놓는 집값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집값 통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정부가 시장을 오판해 정책도 올바르게 나오기 어렵다는 주장도 곁들여진다. 지난 16일 열린 올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에서도 어김없이 한국감정원 부동산 통계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실거래가보다 부풀려진 감정원 중위가격?= 박상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한국도시연구소가 분석한 ‘2020년 상반기 실거래가 분석 보고서’를 근거로 올해 1~8월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5만8782건의 ‘중위가격’은 6억7000만원으로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올해 1월(8억3921만원)~8월(8억5301만원)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과 비교해 1억5000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중위가격은 거래 대상 아파트를 일렬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위치한 주택의 가격을 말한다. 양극화가 심화한 주택시장에서 ‘평균가격’은 시장에 대해 착시를 일으킬 수 있어 진짜 중간 가격대 수준 집값을 판단할 때는 중위가격 지표를 많이 활용한다.
감정원이 발표하는 중위가격이 실제 중위가격보다 부풀려져 시장 참여자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는 게 박 의원의 주장이다. 그는 “실거래가 기반의 신뢰할 만한 집값 통계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간 작성 시세와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송언석 의원(국민의힘)은 한국감정원 시세 지표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KB국민은행이 조사하는 시세 통계와 비교했을 때 격차가 과거 정부에 비해 너무 벌어졌다는 것이다.
송 의원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 임기 기간 한국감정원과 KB국민은행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각각 –4.1%, -4.5%로 두 기관의 통계 간 격차는 0.4%포인트로 비슷했다.
집값이 반등하기 시작한 박근혜 대통령 임기 기간엔 두 기관의 매매가격 변동률이 각각 12.5%, 10.4%로 격차는 2.1%포인트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 때보다 두 기관 간의 통계 격차가 다소 증가했지만, 표본 오차 등을 고려했을 때 크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두 기관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증감율은 확연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부터 2020년 8월까지 한국감정원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변화는 15.7%인데, KB국민은행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이 수치의 2배에 달하는 30.9%나 된다. 두 기관 간 격차가 15.2%포인트로 벌어졌다.
KB국민은행 집값 통계는 대출 기준 등에 활용되는 공신력있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정부 공식 통계와 격차가 너무 크다는 건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게 송 의원의 추측이다.
송 의원은 “통계 격차가 이명박 정부와 비교했을 때 38배, 박근혜 정부와 비교했을 때 7배 벌어졌다”며 “표본 공개 등을 통해 국가승인통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감정원과 KB국민은행 등은 시중 중개업소에 나온 매물 정보를 기준으로 시세 정보를 작성한다. 서울 강남권 중개업소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헤럴드경제DB] |
▶표본 설계에 따라 달라지는 부동산 통계= 국감 과정에서 나온 한국감정원 부동산 시세에 대한 이런 지적은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지적된 문제지만 왜 해소되지 않는 걸까. 집값은 표준화가 어렵다는 특징때문이다. 한 단지 내 같은 크기 아파트도 층, 향, 수리여부 등에 따라 수억원씩 차이가 난다. 집주인 사정에 따라 급매물로 나와 시세보다 싸게 팔리기도 하고, 매물이 일시적으로 부족한 시기엔 성급한 매수 희망자가 시세보다 과도하게 높은 가격으로 살 수도 있다. 옆집이 5억원에 팔렸다고 우리 집도 같은 가격에 팔라는 법 없다. 정부 정책에 대한 판단, 시장 동향에 따라 한 달 만에 수억원씩 달라질 수 있다.
같은 단지임에도 사정이 이러한데, 172만채나 되는 서울 아파트 전체를 대상으로 하면 어떻겠나. 서울 집값 통계를 객관적으로 작성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한국감정원과 KB국민은행, 부동산114 등 주택 시세 조사 작성기관은 표본 조사를 통해 통계를 작성한다. 한국감정원이 매주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값 동향에 활용하는 주택은 9400가구 정도다. 내년부터 1만3720가구로 표본을 늘려 공신력을 높인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지만 아직 민간에 비해 표본 규모가 작다. KB국민은행이 시세를 작성할 때 활용하는 표본은 3만4000여가구다. 한 단지 같은 크기 아파트도 시세가 수억원씩 차이가 나는데 어떤 것을 표본으로 삼아 집값 통계에 활용할까. 표본을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시세 변동률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거래가만 믿으면 될까?= 사정이 이렇다보니 ‘실거래가’만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실거래가를 보다 빨리 파악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받아들여져 지난 2월부터 실거래가 신고일을 기존 60일에서 30일로 줄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실거래가가 집값 통계 문제를 해결해 줄까. 당신이 집을 판다고 가정하자. 얼마에 내놓을까? 일단 주변 실거래가를 확인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일까. 중개업소에 확인하니 요즘 이 지역에 매물이 없는데, 사겠다는 수요자가 많다고 한다. 주변 다른 단지 아파트값은 계속 오르는 추세다. 그래도 같은 단지 같은 크기의 직전 실거래가로 내놓을까? 당연히 올릴 것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이나 용산구 한남동 등 고가 빌라 단지나 단독주택 밀집지역처럼 실거래 사례가 별로 없는 지역은 더 복잡하다. 같은 단지에 2년 전 거래된 실거래 사례가 있다. 과연 그 값을 해당 지역 집값이라고 할 수 있나. 그 사이 달라진 주택 시장 상황, 개발호재 등 각종 변수를 반영해야할 것이다. 실거래가가 정말 해당 지역 집값이라고 할 수 있나?
집주인은 물론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따라 집값을 정한다. 이른바 매도 ‘호가’다. 몇몇 시민단체는 호가는 실제 집값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집주인 입장에선 현재 시장 상황, 미래가치를 고려한 가장 합리적인 값이다. 실거래가에 온갖 변수를 반영한 진짜 집값이다.
물론 이 가격에 팔릴지 여부는 아무로 모른다. 집값이 오르는 활황기엔 매수자가 금방 따라온다. 호가는 금방 실거래가가 된다. 다시 호가는 더 뛴다. 반대로 요즘 같은 침체기엔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집을 빨리 팔아야하는 ‘사정 있는’ 집주인이 호가를 낮출 수 있다. 그래도 수요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호가는 더 떨어진다. 그렇게 집값은 떨어진다.
이렇게 특정 단지에 나오는 호가, 실거래가 등이 모여 ‘시세’가 된다. 예컨대 A아파트 시세는 ‘8억~10억원’으로 표시된다. 가장 싸게 나온 것부터 비싼 것까지 모두 포함한다. 한국감정원과 KB국민은행은 이런 시세 정보를 단지별 크기별로 제공한다.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 키워야= 요즘 서울이나 수도권 인기 지역 주택시장이 아리송한 건 실거래가가 시세보다 더 많이 오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어서다. ‘신고가’ 거래 사례가 속출하는 단지의 같은 크기 아파트 시세를 보면 신고가보다 낮게 형성돼 있는 경우가 많다. 정부 규제로 매물이 없고, 호가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한 건씩 실거래가 성사되는 게 역대 가장 비싼 사례로 남는 것이다.
이는 최근 한국감정원이나 KB국민은행 시세 흐름이 안정적이라고 해서 안심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시사한다. 집주인은 여전히 더 높은 가격에 매물을 내놓고 싶고, 이를 사고 싶은 사람도 여전히 많다는 걸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통계는 참고로만 활용해야한다고 조언한다. 한국감정원, KB국민은행, 부동산114, 실거래가 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하고 직접 자기가 사고 싶은 지역 중개업소를 다니면서 스스로 집값 흐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지역별 시장 분위기도 달라서 서울 전체 평균 집값이 오른다고 서울의 모든 지역이 다 오르는 게 아닌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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