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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전환 글로벌 승자 5년내 윤곽…한국에 결정적 찬스” [2021 신년인터뷰 ⑤이정동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계기
증기·전기·기계 등과 같은 ‘범용기술’
30년전부터 물밑 진행 아직은 ‘미완’
시스템 복잡한 선진국보다 한국 유리
조달 예산 年100조, 혁신제품 구매
기업 기술혁신 동력으로 활용 가능
포스코 등대공장 제조업 혁신 선도役
현장의 필요 파악 ‘디지털 감수성’ 핵심
소수 AI전문가보다 현장 근로자 중심
국가 ‘러닝 팩토리’ 개념으로 평생교육
韓, 글로벌 대형위기마다 반등의 역사
코로나19도 극복·도약 전기 마련 중요
이정동 교수는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옥스포드 저널 ‘Science and Public Policy’ 에디터 ▷대통령비서실 경제과학특별보좌관

대담 : 박영훈 미래산업부장

“아디다스 스피드 팩토리는 문을 닫았고, GE IoT(사물인터넷) 플랫폼 프레딕스는 실패했습니다. 테슬라 로봇 자동화 공장도 효율 문제로 애를 먹었습니다. 전 세계 누구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에서 해답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정동 서울대학교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가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 어떤 국가도 앞서 나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기술력이 앞선 국가들과 한국 모두 동등한 ‘출발선’에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이들을 추월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축적의 시간’, ‘개념설계’ 등의 화두를 던지며 기술 혁신 청사진을 제시해 온 대표적 학자로 손꼽힌다. 2019년 1월부터는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이 교수는 “과거 증기, 전기, 기계 등이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것처럼 디지털 전환 또한 전 영역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증기 등장으로 영국이 주도권을 잡았고 전기로는 미국이 선두로 뛰어 올랐으며 독일은 기계로 세계 적 선진국이 됐다”며 “전 산업에 고루 적용되는 범용기술이 탄생할 때마다 국가 위상이 뒤바뀌어 왔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들 상위 국가들이 디지털 전환에 유리하지만은 않다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선두 국가들은 새로운 체제로 옮겨야 할 기존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전통 방식에 투입한 매몰비용(sunken cost)이 높아 디지털 전환을 추진한다고 해도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디지털 전환이 수면 위로 본격 올라오면서 국가 간 100m 출발선이 새로 그어졌다”며 “누가 1등 테이프를 먼저 끊을지 판가름할 수 있는 시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 교수는 디지털 전환 미래 판도는 5년내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전기 발명 후 이를 산업 현장에 보편적으로 적용하기까지 20년 이상 걸린 것처럼 디지털 전환 기술도 1990년대 본격화돼 30년간 끓는점에 도달하는 과정을 거듭했다”며 “아직까지 디지털 전환 기술로 수익을 낸 사례는 많지 않지만 슬슬 현장에 안착되고 있어 적어도 5~6년내에는 승자가 결정되며 새로운 질서가 확립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한국이 디지털 전환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시간 또한 5~6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시기 투자와 실행에 따라 재편될 세계 질서에서 한국의 입지가 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 교수도 지금이야말로 한국 미래에 ‘결정적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해 대유행한 코로나19가 디지털 전환의 강력한 촉매제가 됐다”며 “디지털 전환은 더 성장하고 수익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담보할 필수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에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교수는 “디지털 전환에는 짜여진 로드맵과 정답이 없다. 산업 곳곳에서 다양하고 작은 혁신 실험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며 무수한 시도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위기 전후 기업성장을 분석하면 기술혁신 투자를 많이 한 기업이 아니라 꾸준하게 투자한 기업들이 더 빨리 회복하고 성장했다”며 “경영 위기일수록 기술혁신이 지속돼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경영 위기 속 기업들은 기술에 투자할 자금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혁신 지원도 늘어나야 한다”며 “정부 재정은 경기가 어려울 때 더 많이 투자돼 기업들의 줄어든 혁신 투자를 메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 교수는 “정부가 조달에 쓰는 한해 예산만 100조원 규모로 이를 혁신 실험에 나선 기업 제품 구매에 활용하면 기업들이 더 많은 시도들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국이 보유한 원천 경쟁이 뒷받침되면 더욱 저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제시했다. 무엇보다 한국이 디지털 전환을 통해 ‘반전’을 노려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산업 저변에 깔린 잠재력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를 디지털 전환을 위한 ‘근육’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스코 스마트팩토리다. 포스코는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으로부터 세계의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으로 선정됐다. 국내 기업 첫 사례였다. 등대공장은 어두운 밤하늘에 ‘등대’가 불을 비춰 길을 안내하듯,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디지털 전환 핵심 기술을 적극 도입해 세계 제조업의 미래를 혁신적으로 이끌고 있는 공장을 뜻한다.

포스코 이전까지 세계의 등대공장으로 등재된 공장은 총 16개로, 국가별로 유럽 9개, 중국 5개, 미국 1개, 사우디아라비아 1개였다. 당시 세계경제포럼은 “포스코는 철강산업에서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위해 AI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대학, 중소기업, 스타트업들과의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 철강산업 고유의 스마트 공장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고 등대공장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포스코 등대공장은 AI전문가 능력으로만 이룬 결과물이 아닌, 포스코 근로자들만 제기할 수 있는 현장의 문제의식이 밑바탕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현장에 어떤 디지털 전환 기술이 필요한지 콕 집어 요구할 수 있는 ‘도메인 전문가’가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연일 수주 낭보를 전하고 있는 조선업계도 디지털 전환 주요 분야로 꼽혔다. 특히 2019년 현대중공업이 사우디 합작조선소인 ‘IMI’와 설계기술 판매계약을 체결한 것은 ‘역사적 순간’이라고 이 교수는 평가했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라이선스 계약으로 IMI에 VLCC(초대형유조선) 기본, 상세 설계도면과 설계지원, 기술컨설팅 등 설계 전반에 대한 노하우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이 1971년 말 영국의 스콧리스고로부터 26만t급 VLCC 2척의 설계도면을 임대해 첫 선박을 건조한 이후 반세기 만에 설계 기술력을 수출하는 회사로 성장한 장면이었다.

이 교수는 “서비스 산업 중심인 유럽 국가들은 AI 스마트팩토리를 확대하고 싶어도 이를 적용할 공장이 부족하다. 반면 한국은 디지털 전환 기술을 탑재할 몸체를 보유하고 있다”며 “각 산업현장에서 디지털 전환 필요성과 관련 문제들을 지속 제기해야 비로소 전문가들이 실행에 돌입할 수 있다. 현장에서 각종 문제가 출제되는 순간 우리 산업이 역동적으로 디지털 전환될 찬스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장에서 디지털 전환 수요가 폭발하지 않는다면 산업은 결국 낡은 전통(레거시)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장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 후에도 디지털 교육이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이 특히 중요하다고 이 교수는 역설했다. 그는 “한국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사람은 연봉 10억원이 넘는 AI 전문가가 아니라 현장의 30~54세 약 1500만명 근로자”라며 “이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디지털 전환 기술을 독학하는 현실에서 평생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 체계적인 지식 습득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디저털에 관심을 갖게 하는 ‘디지털 감수성’을 높여줘야 한다”며 “디지털 전환 수요자인 현장 근로자들 디지털 감수성이 올라가야 공급자인 전문가들 역량이 비로소 빛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국가 전체가 디지털 전환 감수성을 기르는 거대 ‘교육 공장(러닝 팩토리)’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밝혔다.

정부 등 공공 부문도 디지털 전환 속도에 발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 대비 경제 성장동력으로 내세운 한국형 뉴딜 주요 추진축 중 하나가 공공 부문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한국형 뉴딜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로 구성됐다. 디지털과 에너지 대전환을 통해 국가 장기적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이 교수는 “한국형 뉴딜은 마중물로 공공 부문이 먼저 나서 디지털·그린 전환의 실험대상이 돼 그 효과를 국가적으로 전파해야 한다”며 “공공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민간에서 뉴딜자금을 받아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학교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기 위해 지방교육청 공직자들이 과제들을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기업들이 도전적인 과제에 참여하면서 기술 혁신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성과가 민간에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글로벌 대형 위기 때마다 반등의 역사를 썼던 한국이 이번 코로나19 위기 때도 저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이던 1980년대 초 오일쇼크를, 1만달러를 돌파하던 1990년대말 외환위기를, 2만달러를 넘긴 2000년대말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각 위기 이후 오히려 더 가속 성장한 전례가 있다”며 “이는 과거 아르헨티나, 브라질, 태국 등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유의 스토리”라고 말했다. 이에 “막 3만달러를 넘어선 현재 코로나19를 맞았지만 각기 다른 위기 속에서 기적적으로 극복하고 반등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번에도 극복과 반등의 기회가 있다”며 “이미 비대면, 바이오 기업들은 매출 700~1000%씩 오른 사례도 있어 디지털 전환을 발판으로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리=정태일 기자, 사진=이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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